대학원생 현우가 파리에 온 이유
오늘은 온전히 파리에서 보내는 하루다. 3번째 파리에 온다는 자신감 때문에 참 오만하게도 아무계획을 짜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와 새삼 뭐하지 라는 생각이 드니 역시 계획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숙소에서 씻고 누워 시간을 보내다가 동행 단톡하나에서 연락이 왔다. 남자 한분이 퐁피두와 마레 지구를 여행할 계획이니 같이 할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 두 곳모두 딱히 가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함께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급작스레 동행을 구하고 1번 지하철을 타고 퐁피두 센터로 향했다.
퐁피두 센터 앞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는 누가 봐도 혼자서 쭈뼛대는 한국인들이었기에 어떤 옷을 입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급작스럽게 함께 하게 된 친구는 29살의 대학원생 현우였다. 나는 아무 계획이 없다며 너의 계획에 온전히 따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오히려 나때문에 빠르게 틀어졌다. 뮤지엄패스가 있는 현우는 퐁피두의 전시를 먼저 2시간정도 감상한 후에 마레지구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는 뮤지엄 패스가 없었고 뮤지엄패스없이 티켓을 사야 들어 갈 수 있는 줄은 훨씬 길었다. 이 타이밍을 맞출 수가 없던 우리는 먼저 마레지구에서 점심을 먹고 현우는 전시를 보러가고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현우는 이러나 저러나 괜찮다며 편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마레지구로 이동하면서 서로 여행을 하게된 이유를 물었다. 처음 현우가 대학원생이라고 했을때 나는 이른바 ‘밈’화 되고 있는 대학원생들의 불쌍한 이미지에 대해서 물었다. 장난식으로 던진 질문이었지만 현우는 사뭇 진지했고 그 대학원 생활의 힘듬이 지금 여행을 오게 만들었다고 했다. 산업공학쪽 유망한 분야의 석사과정을 밟고 있지만 현재가 너무 힘들어 버티기가 힘들다고 한다. 매일같은 프로젝트로 철야는 기본이고 그 결과물에 있어서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 반복되다보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했고 안좋게 나온 검진 결과를 보고 조금 쉬어가는 것이 좋다는 결과를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잠시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며 진로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서 혼자 여행오기를 선택했고, 여행지도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파리에만 있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굉장히 깊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여행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허물없이 고민을 얘기하고 풀어놓을 수 있다. 여행지가 주는 해방감과 그리고 어찌보면 처음보는 사람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볼일 없을지 모르는 사람이 주는 심적 편안함이 우리를 오히려 해소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렇게 서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며 걷다보니 또 금새 마레지구에 도착했다. 마레 지구에서 우리는 현우가 찾아 놓은 몇개의 식당중 하나를 골라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현우는 프랑스 음식이 아닌 유태인 음식을 찾아놓았다고 했다. 마레지구에 일부가 유태인이 모여 사는 주거지역이 있고 그곳에 가면 유태인 식당이 많고 정통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 이야기를 곁들여 설명해주었다.
“형 조승연 작가가 파리에서는 프랑스 음식만 고집하지 말래요, 다민족의 집합체 같은 곳이기 때문에 파리에 자리잡은 다양한 민족들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좋다구요.”
참 그것도 맞는 말이다. 나도 프랑스 파리에 올때 마다 즐겨 먹었던 음식이 생각해보면 팔라펠과 같은 유태인의 음식이었다. 그래서 그 중 가장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하지만 그 식당의 오픈시간이 12시여서 약 30분을 기다려야 해서 우리는 간단히 마레지구를 둘러보기로 했다.
마레지구를 둘러보면서 현우는 마레지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이 원래는 늪지대 였던 것, 프랑스 재개발 계획에서 제외 될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었다는 것등 자신이 조사해온 이 지역에 대한 정보를 마치 능숙한 가이드 처럼 말해주었다. 문득 이렇게 말하는걸 좋아하는 친구가 어떻게 혼자 여행을 하고 있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데 혼자 여행하는 동안 외롭지는 않았어?”
“형 근데 저도 외로운지 정말 몰랐는데, 형을 만나고 재밌게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제가 외로웠다는 걸 알게 됬어요”
나의 현재 상태를 가장 모르는 것은 나일지 모른다. 현우가 막상 자신이 외로웠다는 것을 몰랐을 만큼 우리는 늘 본인의 놓여진 상황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기 변명을 만들어 스스로를 최적화 시킨다. 힘들지 않다, 외롭지 않다. 하며 말이다.
현우가 나를 만나고 나서야 그 동안의 여행이 외로웠음을 깨달았듯이, 나도 여행을 와서 비로소 내가 그간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실 여행이 그리 가고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성취해내는 삶이 그리 지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여름 휴가는 왜 가지 않는지 물어볼때도 나의 대답은 담백하기 그지 없었다.
“딱히 휴가를 갈 필요를 못느끼겠어요.”
하지만 여행을 떠나오니 내가 아주 중증의 환자였구나를 깨달았다. 여행지에 떠나와서도 일을 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떠나온 이상 ‘일’이라는 존재자체가 굉장히 3인칭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조금씩 내 눈앞에 주어지는대로 처리 되어지던 일들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회사의 단톡방은 돌아간다. 단지 휴가중인 나에게 향하지 않을뿐이지 그들이 지금 어떤일은 부여받고 어떤일들을 처리해야하는지가 눈에 보인다. 그것들을 보다보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정신없이 저 일을 처리하고 있었을 나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은 숲안에 있으면 지금 눈앞에 베어야할 나무들 밖에 보지 못한다. 한번 쯤 숲밖으로 나와서 내가 얼마나 많은 나무들 사이에 둘러쌓여 있는지 봐야한다. 또한 이 숲의 나무를 다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베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 나의 과업이라면 그 방향을 숲 밖에서 보고 계획해야한다. 나는 참 그러질 못했다. 눈 앞의 나무를 빨리 베어나가는 것에만 집착해 그것이 힘들지 않다고 나를 항상 위로했다. 그리고 정작 옳은 길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퇴사가 아니더라도 휴가는 꼭 가야한다. 휴가는 단지 쉬는 것이 아니다. 잠시 숲밖으로 나와 나의 숲을 멀리서 보는 것이 휴가다.
마레지구를 가볍게 한바퀴 돌고 우리는 Miznon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따. 친절한 직원에게 메뉴 추천을 받아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두가지 주문했다. 유태인식 비프 부르기뇽과 매운 생선 요리였다. 두 요리 모두 유태인식 빵 피타에 넣어 싸서 먹는 음식이었다. 두 요리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첫번째 요리는 흰살 생선을 상큼한 소스와 견과류 소스와 조합되어 있었다. 상큼한 터치가 입맛을 돋구었고 그리고 먹다보니 느껴지는 견과류 소스의 부드러움이 자칫 너무 시게 느껴줄 수 있는 맛의 밸런스를 맞춰 주었다. 비프 부르기뇽은 감동 그 자체였다. 사실 비프 부르기뇽은 프랑스 전통 요리이기 때문에 유태인 식당에서 만든 것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양지 살을 오래 익혀 고기는 굉장히 부드러워졌고 유태인 음식 특유의 향신료의 맛과 기본적인 비프 부르기뇽의 묵직한 맛 그리고 은근히 느껴지는 풍미 깊은 치즈의 향이 모두 느껴졌다. 이 요리를 피타에 싸서 먹으니 한입에 굉장히 조화로운 맛이 어우러졌다. 마치 여러 나라의 문화가 녹아 있는 파리처럼 말이다. 유태인식으로 만든 프랑스 전통 요리 뵈프 부르기뇽, 오히려 프랑스 정통 음식보다 좀 더 제대로 파리를 표현한 음식이 아닐까 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보니 어느새 길게 늘어진 식당의 줄이 보였다.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 실감이 가는 광경이었다. 제대로 된 파리의 맛을 느끼려는 사람들에게 이깟줄이야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이스라엘 맥주 두병을 가볍게 마시고 점심식사를 끝냈다. 현우와의 즐거운 마레지구 관광과 점심식사를 끝내고 여기서 헤어지게 되었다. 서로의 앞으로 무탈한 여행과 각자 여행에서 원하는 답을 얻기를 기원하며 가벼운 악수를 했다.
아침부터 생각지도 못하게 가득가득 들어찬 아침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후 시간에 대한 여유가 생겼다. 천천히 센강을 따라 루브르, 튈르리 공원을 걸어보기로 했다. 먼저 센강을 따라 걸었다. 오늘은 비 예보가 있었음에도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예뼜다. 센강을 따라 걷다가 예쁜 다리가 보이면 한번씩 중간까지 가보고 난간에 기대 하염없이 강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한 미국인 커플이 본인들의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허리를 숙여가며 열과 성을 다해 찍어주었다. 나의 포즈를 본 미국인 커플은 사진은 확인 안해봐도 잘나왔을 것 같다며 웃으며 감사인사를 했다. 그러던 차 나도 사진을 한 장 요청했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가장 부족한 것이 누가 찍어주는 나의 사진일것이다. 이런 틈을 놓칠세라 부탁했고 나의 열정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햇빛 방향까지 체크해주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었다. 보통 외국인이 찍어주는 사진은 불만족 하기 마련인데 이번 여행 최고의 사진이 나름 이 커플의 손에서 탄생했다. 우리는 기분 좋은 여행자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Have a nice trip”
센강을 따라 걷다보니 루브르 박물관 옆을 지나고 있었다. 루브르 앞 피라미드라도 보고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근데 루브르 광장에 가득한 관광 인파를 보고는 바로 지나치기로 했다. 그리고 루브르 바로 앞에 있는 튈르리 정원으로 갔다. 그래도 오래 걷다보니 조금은 지치기 시작했다.
튈르리 정원에서 나무 그늘아래 비스듬히 눕혀진 벤치를 찾았다. 그곳에 잠시 온몸을 내려놓고 쉬었다. 잠시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바라보기도 하고 헤드셋을 끼고 여유를 즐기는 프랑스 사람의 여유를 지긋이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뭘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파리에 온김에 몽마르뜨 언덕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몽마르뜨 근처에 오니 몇년전 와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전세계의 언어로 '사랑해'가 적힌 사랑의 벽에는 오늘도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는 멀리서만 한번 바라보고 다시 몽마르뜨 언덕을 올랐다. 혼자하는 여행이라 딱히 사진에 열정적이지도 않게 된다. 언덕에 오르니 파리의 전경이 활짝 피어있다. 하얗게 펼쳐진 파리의 전경을 보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온 곳이지만 아직도 팔찌를 팔기위해 달려드는 상인들은 여전했다. 20분정도 시간을 보내니 얼굴에 쬐는 햇살이 너무 따가웠다.
슬금슬금 언덕을 내려가기로 했다. 언덕을 다 내려와서는 숙소로 돌아가기전 빵집을 잠시 들렀다. 꽤나 평점이 높은 빵집이었지만 관광객이 그리 많이 찾는 곳 같지는 않았다. 직원에게 잘나가는 빵을 추천해줄 수 있는지 물었고 슈크림빵을 추천해주었다. 그래서 슈크림빵과 빵오쇼콜라 하나씩을 포장했다.
나름 알찬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잠시 호텔로 돌아와 휴식했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개선문을 보며 빵을 먹고 차를 마셨다. 이제껏 여행을 하면서 좋은 숙소에 묵는 것에 대한 큰 욕망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파리에서만큼은 테라스가 있는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주는 완벽한 오후 시간이었다. 정말 아무 계획 없이 비워둔 하루였음에도 오전에는 현우를 만나 마레 지구를 보고 유태인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센강을 따라걷다가 발닿는데로 튈르리 공원에가 누워 있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몽마르뜨 언덕으로 가 얼굴이 따갑도록 앉아있었다. 그리고 맛있는 빵 두개를 사서 호텔로 돌아와 빵을 먹으며 글을 썼다. 분명히 비어있던 일정이지만 지나고보니 가득차 있었다. 여행도 흘러가는대로 하다보면 어느새 가득차있는 것처럼 인생도 이렇게 흘러가듯 살아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뭘 해야할까 고민하던 차, 전날 비행기가 지연되는 바람에 놓쳤던 바토무슈(센강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마침 온라인 카페에 검색을 해보니 바토무슈를 타려는 사람들이 몇있어 동행을 구해 가게 되었다. 우리는 저녁 바토무슈를 타기 전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고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스테이크집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나는 테라스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