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밤 Oct 14. 2023

파리3, 인생의 모든 것은 전화위복이다.

비가 왔기에 파리에 무지개가 떴다.


숙소가 워낙 좋은 위치에 있던 탓에 스테이크 식당도 걸어서 금방 갈 수 있었다. 샹젤리제 방향으로 20분 정도를 걸었다. 6시 10분, 식당에 도착하니 친절함이 가득한 웨이터가 문을 열어주었다. 호텔 리셉션의 무뚝뚝함부터 경험한 나로서는 프랑스에서는 처음 받아보는 친절함이었다. 돌아보니 한눈에 일행임을 알 수 있는 20대 여자가 앉아있었다. 29살 솔비였다. 잠시 어색한 인사를 주고 받고 몇마디를 나누고 있으니 한분이 더 도착했다. 36살 기범이형이었다. 솔비는 파리에 온지 일주일째, 나는 이틀째, 기범이 형은 도착한지 한시간 조금 넘은 상황이었다. 이곳 식당의 직원들은 매우 친절했다. 직접 먹을 스테이크를 보여주면서 고르게 해주었고 이런류의 식당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차근차근히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400g 정도 되는 드라이에이징 등심 스테이크와 비프 타르타르, 프렌치 어니언 스프를 시켰다.



음식을 시켜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직장인이었지만 조금씩 달랐다. 회계쪽 일을 하는 솔비는 잦은 야근에 번아웃이 와서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다음에 갈 회사도 아직은 정해두지 않았지만 쉬고싶다는 생각이 커서 훌쩍 유럽으로 떠났다고 한다. 기범이형은 승진을 했다고 한다. 사실 직장인이 이만큼 오래 휴가를 내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승진을 하게되면 승진 연차가 10개가 생기고 무조건 소진해야한다고 한다. 직장인에게도 한번쯤이렇게 숨쉴 기회를 주는것은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범이형의 런던 이야기, 토트넘 경기 직관한 이야기 그리고 솔비의 프랑스 여행 추천 코스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기다렸다.



비프 타르타르와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먼저 나왔다. 비프 타르타르는 이탈리아식 육회같은 요리로 생고기와 피클과 야채 그리고 각종 허브를 섞어 만드는 요리로 전식으로 주로 먹는다. 이곳의 비프 타르타르는 거의 고기를 다지는 식으로 해서 빵에 발라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 부드럽게 나왔다. 식감이 너무 부드러웠고 상큼한 맛이 가미되어 입맛을 돋구기에 좋았다. 프렌치어니언수프는 식기부터 에멘탈 치즈를 덮은 방식 그리고 안에 빠져있는 빵까지 모두 프렌치 어니언 수프의 정석을 지키고 있었다. 맛도 프렌치의 정석대로 영혼을 달래는 맛을 잘 표현해 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스테이크, 스테이크가 우리나라 한우처럼 지방이 많은 것은 아니어서 기름 맛이 강하게 느껴지거나 입에서 녹아내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주문한 미디엄레어의 익힘정도가 훌륭하게 맞춰졌고 드라이에이징 되어서 그런지 약간 치즈향 처럼 풍기는 육향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영국에서 넘어온 기범이 형은 역시 음식은 프랑스라며 연신 감탄을 했다. 솔비는 혼자 여행을 하다보니 이렇게 제대로 된 식당음식은 많이 먹지 못했다며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해했다.


좀 더 음식을 여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노을이 지는 타이밍에 유람선을 타야했기에 조금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8시 유람선을 타기위해 조금 빠르게 식사를 마무리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배도 든든하게 채웠겠다. 신나게 유람선을 타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꿈은 가게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깨지고 말았다. 비가 엄청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파리에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이제야 들어맞은 것이다. 우리는 그래도 가다보면 그치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를 걸고 우산을 쓰고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비를 피해야 했다. 어느 가게의 천막 아래에서 멀뚱히 하늘을 보고 있었다. 모두 이 상황이 어이가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비가 오는 파리를 멍하니 바라보는게 또 나쁘지 않았다. 순간 기범이형이 말했다. 


“그 어떤 안좋은 날씨나, 말도 뒤에 파리라는 것만 붙으면 안좋은게 아니고 좋은게 되는거 같아.”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비가 오는 파리, 바람이 부는 파리, 흐린날의 파리, 이렇게 원래같으면 꿉꿉하고 귀찮은 날씨들이 뒤에 파리만 붙었을 뿐인데 낭만있고 좋은 것으로 바뀌어버리는 것 같다. 계속 오는 비에 우리는 어찌할까 고민하다 바토무슈는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먼저 식당에 가서 밖에 하나 남은 테라스 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종업원은


“몰라 저기 매니저한테 물어봐”


역시나 친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 이것이 인종차별이라거나 그런것은 아니다. 단지 프랑스에서는 손님이 왕이 아닐 뿐인듯하다. 내가 계속 매니저를 찾지 못하고 머뭇대는 모습을 보이자 본인이 직접 매니저를 찾아가 물어봐 주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앉아도 된다는 메세지를 보낸다. 츤데레같기는.


우리는 방금 실컷 스테이크를 먹고 나온 차라 사실 식사를 주문하기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곳의 문화를 잘모르기에 디저트와 술만 주문 가능한지 궁금했다. 그래서 혹시나 그 직원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레스토랑 이잖아.”


당당하게 돌아온 말이었다. 어찌보면 레스토랑은 식사를 하는 곳이라는 개념이 잡혀있는 이 나라에서 식사 주문없이 디저트만 주문한다는 것은 당연히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인것은 그렇게 이래저래 정하는 사이 비가 그쳐서 우산 없이도 걸을만한 날씨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정대로 바토무슈를 타러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슬 옮기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기범이형이 하늘을 가르켰다.



“무지개다.”


짧은 비가 지나가고 난 하늘에는 무지개가 떠있었다. 그리고 딱 석양이 지는 시간대라 하늘은 살짝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파리의 건물 위로 핑크빛 하늘이 물들고 그 안에 무지개가 뜨는 광경을 보다니 이건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인생의 모든 것은 전화위복이다. 



짧은 무지개를 뒤로 하고 우리는 서둘러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했다. 그래도 해가지기전에 석양을 볼 수 있는 유람선을 타고 싶었다. 시간을 보니 예정했던 7시 30분 배는 타지 못하지만 8시 비행기는 충분히 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10여분을 열심히 걷고나니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고 에펠탑에는 아름다운 노란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람선은 패키지 여행의 필수 코스인것 같았다. 그렇게 보기 힘들던 한국 사람들을 여기서 다 볼 수 있었다. 유람선 앞좌석에 탑승한 어머니들은 살갑게 말을 걸어주셨다.


“학생들이에요? 방학이에요?”


맹세코 우리가 먼저 학생이라고 하지 않았다. 항상 어려보이길 소망하는 나의 소원이 통했는지 학생으로 보이는 것에 성공이 내심 뿌듯했다. 물론 어머니들 눈에는 누군들 나이들어 보이겠으랴. 우리는 어머님들과 짧은 담소를 나누며 잠시 한국의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내 유람선이 출발했다. 유람선을 타고 센강을 타고 늘어져 있는 파리의 주요 명소들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명소 뿐만 아니라 센강을 따라 배위에 차려진 술집에서 저녁을 즐기고 있는 파리지앵들의 여유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한손에 술잔을 들고 한껏 신나보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살짝 술에 취해있어 그런지 나의 손짓에 더 큰 액션과 환호로 화답해주었다.



센강을 다 돌고 이미 어둑해진 하늘, 유람선 투어의 끝에서 만난 황금빛으로 밝게 빛나는 에펠탑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감동적이었다. 9월 말 저녁의 유람선은 추웠다. 긴팔의 맨투맨을 입었지만 파리의 강바람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한껏 비를 맞아 젖은 옷도 추위에 한몫했을 것이다. 유람선을 한시간 정도 타고나니 감기가 올 것만 같았다. 파리에서 마지막 날이니 센강 근처에 있는 바에 가보려고 했던 계획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서 몸을 추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30분정도 센강을 돌고난 바토무슈는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엔 추위 때문에 배 위에서 풍경을 보지 못한것이 좀 아쉬웠지만 7천원에 느낄 수 있는 최선의 만족감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선착장 근처 지하철역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솔비는 내일 이탈리아로 나는 니스로 떠난다. 기범이형은 이제 파리에 남아 여행을 시작한다. 담백한 작별인사를 뒤로 하고 우리는 각자의 길로 향했다. 선착장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였다. 대중교통을 타기가 애매했던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파리의 밤길을 걸음으로 재촉해 숙소로 돌아갔다. 


파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아쉬움을 남겨둘 새는 없었다. 아직 남은 시차적응과 유람선의 강바람은 숙소에 도착한 나를 바로 잠속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