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가 필요한 시기 하지만 퇴사는 무서워
올해로 33살이다. 올해부터 지정됐다는 새로운 만 나이 이런거말고 내 관념속에 자리한 내 인생의 나이는 33살이다. 나는 대학을 늦게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조금 늦게 28살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것저것 하고싶은 것이 참 많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 바로 취업을 했다. 그리고 한 직장에서 꼬박 4년을 일했다. 그리고 5년이란 시간 이후에 얻은 대리라는 나름의 증표를 들고 첫번째 이직을 했다. 이직을 한지 6개월차, 어찌보면 숨쉴틈이 없었다. 사실 숨을 안쉬고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으로부터 딱 8년전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미국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서 영어공부를 하려고 휴학을 했고, 토플을 치고 남은 2개월 정도의 시간에 나는 아빠와 조금은 충동적인 순례길에 올랐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에 수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는 마치 어제의 일처럼 그날을 추억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진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5살의 나이에 순례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훨씬 행복한 사람이었다. 25살 대학생인 나는 꿈이 많았고 하고 싶었던 것도 참 많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용기가 있었다. 나는 외국 생활을 해보고 싶었고 그 뾰족한 목표를 위해서 밤낮없이 영어공부를 하며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딱히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나의 꿈을 응원해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줄도 알며 때로는 나의 꿈을 위해 뾰족하게 달려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물론 그때 보단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을 것이다. 이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평일에 정규직으로 일하며 나쁘지 않은 월급을 받는다.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내 돈으로 한다. 월급으로 투자도 하고, 테니스도 치고, 사고 싶은것도 사며 멋드러진 직장인이 되면 하고싶었던 것들을 잘하며 사는중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때보다 행복한 가를 묻는다면 답변하기를 머뭇거릴 수 밖에 없다.
현재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부끄러운 고백 일 수 있겠지만 나만 이런건 아닐것이라 위로해본다. 일을 시작하고 순수하게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 참 쉽지 않았다. 사랑이라 믿으며 만났던 사람과도 사랑이 아닌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로 다투고 헤어졌다. 그런 경험 이후엔 겁이 나고 나만의 벽을 쌓았다. 그 벽을 넘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매번 키를 잰다.
현재 나의 꿈은 뾰족하지 않다.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후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나는 목표가 무엇일까? 중고등학생때는 좋은 대학에 가야지라는 목표가 있었다. 대학생때는 원하는 직장에 취업해야지 하는 목표가 있었다. 방법과 방향은 다양할지라도 하나의 목표가 있었기에 결국 나는 그 방향으로 걸으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직장에 들어온 뒤로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할지 잘 모르겠다. 물론 가장 당연하고 정해진 길이라 한다면 직장에서의 인정과 승진일 테지만 그것이 결국 내 인생을 궁극적으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 방향이 정답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현재의 나를 이렇게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방황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든지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을 삶이지만 뭔가 불만족스럽고 진짜 내가 원하는 뭔가가 있는데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3살 다시 한번 여행을 가려고 한다. 물론 순례길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포르투갈을 갈것이다. 나는 현재 직장인이고 심지어 이직한지 반년이 좀 지난 상황에 있다. 하지만 직장인에게는 휴가라는 것이 있다. 온전히 나 혼자인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나를 찾는 여행을 ‘휴가’를 써서 가보려고 한다. 퇴사말고 이 짧은 휴가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이 글의 맨 뒷장에 그 답이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