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었던 차가운 병원
처음 입원 이후엔 정신이 많이 없었다.
응급실에서 한숨도 못 자고 병실에 왔으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10시 반에 소화기 내과 교수님 회진이 있다고 하셔서 오빠와 함께 회진을 기다렸다.
교수님의 첫인상은 밝고, 좋은 분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교수님이 없었더라면 짧은 일주일간의 병원 생활이 지독하게 힘들었을 거 같다. 매 회진마다 진심을 다해 나에게 조언해 주셨고, 본인은 췌장암, 대장암 환자만 보는데 내가 몸 상태로는 가장 좋은 편이라며 희망을 가지고 우리 꼭 살아보자고 하셨다.
내가 퇴원하고 싶다는 말을 할 때면, 본인도 정말 퇴근하고 싶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고 꼭 마지막 말의 마무리는 "힘내, 할 수 있어"였다.
5개월이 지난 지금도 한 달에 2번 정도는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온다. 건강을 회복했기 때문에 환자로 가는 건 아니고, 인생 선배와 학생 정도의 관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항상 시술 때문에 점심을 못 드시는 모습을 많이 봐서 에너지바라도 드리고 온다.
자신의 일에 사명감이 깊은 이 선생님을 보며 많은 걸 배우고 있다. 나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경험을 바탕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있을 때는, 흉통이 심해서 순환기 내과에서 해볼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봤다.
심전도, 심장 초음파, 메드트로닉 점검(인공심장박동기를 삽입하고 있다), 운동부하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고 아마 심리적인 요인으로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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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내과에서 정신과 협진을 해서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단발머리에 짙은 쌍꺼풀을 가진 분이었는데, 면담을 하는 30분 동안 나를 거의 쳐다보지 않고 모니터만 응시하며 기계적으로, 사무적으로 대했다.
자살시도한 이유, 그동안 복용한 약물, 우울의 원인 등을 물어보셨고 난 최대한 대답했지만 원활한 대화가 아닌 공허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개인병원에 10개월간 다니면서 먹었던 항우울제 리스트를 보시고는 '도대체 뭘 위해서 이 약을 쓴 건지 모르겠네'라고 하셨다.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그 병원을 다녔던 나에겐 다소 충격적인 말이었다. 나는 그 의사를 믿어서 10개월이나 약을 복용했는데, 다른 의사는 약 처방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았다는 뜻으로 말을 했다. 약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믿고 약을 먹었던 것에 대한 회의감, 매주 병원을 다니면서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 게 모두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굳이 이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진료실에서 나온 뒤에, 엄마에게 잠시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하고 나를 해칠 도구를 찾았다. 살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나의 아픔을 말할 자신도 없었고, 약 부작용 때문에 어지럽고 매일 구역감과 필름이 끊기는 느낌 또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먹으라고 둔 두유병을 발견하고, 내용물을 다 비워서 야외정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두유병을 돌멩이에 내리쳐서 유리조각을 만든 뒤 그었다. 뭐라도 끊어져서 생명에 지장이 가길 바랐는데, 두유병은 생각보다 뭉툭하게 깨진다는 사실을 몰랐다.
피만 흥건하게 뚝뚝 떨어졌고 너무 화가 나고 슬퍼서 유리조각을 손에 움켜쥐어서 있는 힘을 다해 부쉈다. 조각조각이 살을 파고들었고 손과 팔이 피범벅이 된 상태로 울었다. 정말 많이 울었다. 비참했고, 아팠고, 무서웠다.
온 세상이 나를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내 주변의 공기마저 차갑고 멀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날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온통 허무함에 휩싸였다. 그 무엇도 붙잡을 수 없었고, 고요 속에서 나는 내내 무너져 내렸다.
지금까지 느껴본 감정 중에 가장 비참하고 서러웠다. 마치 세상 전체가 내 존재를 부정하는 듯, 끝없이 외로움만이 내 마음을 채웠다.
화장실 가서 손을 대충 닦고 다시 병실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물이 조금만 닿여도 살이 타는 느낌이 들어서 결국 간호사실에 가서 드레싱을 부탁드렸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신경 쓸 환자도 많은데, 하... 자해를 도대체 왜 하고 왔어. 이럼 교수님께 보고해야 하잖아." 매우 퉁명스러운 태도였고, 그 말은 매우 날카롭게 다가와서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태도는 잘못됐다.
그 이후로 나는 정신과 주치의도 신뢰하지 못하겠고, 의료진과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았다. 약도 안 먹었고 하루종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만 있었다. 아무것도 안 먹으니까 수액만 주렁주렁 달렸다.
혈관을 따라 영양소가 공급된다.
또다시 비참함이 느껴졌다.
병실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암환자였고, 살고자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분들과 죽고자 하는 내가 모여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어쩌면 그들은 나에게 삶을 어떻게 붙잡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매일 울면서 생각했다.
난 여기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무조건 퇴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원래 다녔던 병원의 의사에 대한 분노가 남아있던 상태였다. 그 의사가 살찌는 항우울제가 아니라, 다른 항우울제를 처방해 줬더라면 나는 결혼식에서 친척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지도 않았을 거고, 자살시도까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는 누군가에게 분노를 전하고, 탓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입원 중에 개인병원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
거기서 상처를 받고 내가 펑펑 울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To Be Continued.
연재를 잠시 쉬어간다는 글에서, 불행을 나열하는 대신 희망이 되는 글을 쓰고 싶고, 비록 하루를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에서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고 했었어요. 이제는 그 마음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글을 쓰게 됐네요.
다시 연재를 앞두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힘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려봤어요. 그때의 기억들이 저를 괴롭히기보다는, 오히려 '그때의 내가 이런 순간들을 겪었기 때문에 더 단단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있겠지만, 잘 이겨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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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러분의 오늘은 어떠셨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조금 고단했지만, 있는 그대로의 저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된 하루인 것 같아요. 오늘도 아픈 주사를 버티면서 맞고 나오는데 '하.. 내 인생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외과에 갔다가 위 글에 나온 소화기내과 교수님을 뵈러 갔어요.
무능력한 제 모습을 보면 가끔 참 쓸모없는 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얘기를 하니까, 교수님은 본인의 레지던트 시절에 대한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식물인간인 환자 분이 계셨는데, 보호자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차라리 연명의료를 그만두는 게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나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스승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이런 말을 들었대요.
그 환자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존재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겐 힘이 되고 있을 거야. 따뜻한 체온, 숨 쉬고 있는 모습.
가끔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어.
이 말을 들은 교수님은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더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말이 저에게도 참 위로가 되더라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순간에,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기억하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아무리 작고 미미한 존재라 느껴져도,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해 주길 바랍니다.
그럼, 제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 볼게요.
매주 일요일마다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