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두 번째 자살시도
개인병원 정신과 의사에 대한 분노감을 가지고 병원에 갔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한마디는 정확하게 기억난다.
저에겐 책임이 없어요. 본인이 과다복용한 거잖아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내 탓이구나. 내 잘못이지..
난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고, 알겠다고 하며 진료실에서 나왔다. 나는 치료자에 대한 신뢰를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아니, 그냥 사람에게 너무 질려버렸다.
로비에 앉아서 정말 많이 울었다.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운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함께 병원에 간 오빠는 어떤 이유 때문에 우는 거냐고 물어봤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겨우 눈물을 그치고 한 달 치 약을 받아서 나왔다.
그 이후에 오빠가 상담센터 알아본다고 잠시 다른 곳에 갔을 때, 차에서 처방받아온 약을 다 털어먹었다. 오빠가 햄버거를 먹겠다고 해서 병원 근처 버거집에 같이 있는데 정신을 못 차릴 거 같았다. 너무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축 빠져서 도저히 앉아있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에겐 피곤하니까 엎드려 있겠다고 했지만, 난 과다복용으로 인해 약에 취해있었다.
알약이 목구멍에서 넘어갈 때의 불쾌한 느낌과 이후에 가득 찬 물배는 사람을 참 비참하게 만든다. 한 번에 삼킬 때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토를 하니까 최소한의 액체로 고체를 넘겨야 한다. 나도 알고 싶진 않았다. 정말 끔찍하게 힘들기 때문에, 제발. 이런 짓은 절대 하지 않길 바란다.
약을 삼킬 때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어본다면, 간절한 마음이 든다. 이 행동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 살아있는 게 너무 지친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실이었고, 또다시 수액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내가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걸어서 가긴 한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하.. 또 살았구나.'였다. 생명은 참 끈질기다는 걸 느꼈다. 중환자실에 가야 한다는 말도 들었고 굉장히 소란스러운 날들을 보내다가 퇴원을 했다.
간수치가 정상화되었기 때문에 퇴원을 했는데, 내 멘탈은 그대로 나가 있었지만 오빠들 덕분에 많이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수액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다가 입원 이후에 처음으로 먹은 게, 오빠가 사준 마카롱이다.
그날 이후로 마카롱은 내게 의미 있는 음식이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갈망하던 나에게 인생은 그리 쓰지 않다는 걸 알려준 고마운 존재다.
처음으로 오빠들에게 편지도 받아봤다. 새벽 내내 오열을 했던 기억이 난다.
디엔드 안녕? 너한테 편지를 쓰는 게 처음인가?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맨날 받기만 해 봤지 써본 적이 없어서 내 글씨도 모르지? 네가 기념일, 생일, 시험 때마다 편지를 써줬는데 자주 받다 보니 소중함을 잘 몰랐던 거 같네. 편지를 쓴다는 게 참 쉽지 않은데, 이번에 시험 때 편지 하나하나 다 다른 내용으로 적어줬을 때, 참 고맙고 감동이었어. 너는 참으로 세심하고 따뜻한 면이 있어서 나한텐 되게 고마운 동생이야. ㅎ
진작에 좀 적어주고 보답을 했어야 했는데 받기만 했어서 좀 미안하네.. 편지를 적다 보니 너한테 참 미안한 게 많아. 개발 공부 그만두고 집에서 오랜 기간 시간을 보냈을 때, 시간을 같이 보내고 놀아주고 좀 더 관심을 가져줬어야 하는데 다정하고 세심하지 못한 큰오빠라 미안해. 이제 시험도 끝나고 했으니까 어디 놀러도 가고, 같이 배드민턴 치러 가자! 디엔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응원할게.
너 이때까지 잘해왔어. 고생 많았어. 힘든 일 있으면 언제나 말해!!
- 큰오빠
안녕, 디엔드야. 손편지를 쓰는 건 처음인 것 같네. 진심인 마음을 최대한 담기 위해 손편지를 써. 디엔드의 마음이 어떤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디엔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얼마나 무거운지 느껴져. 우울감 속에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고 최대한 이해해주고 싶어. 하지만, 디엔드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해. 엄마, 아빠, 오빠들, @@이, @@이 등 힘들 때 손잡아줄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
앞으로 힘든 일이 찾아올 테지만 성장해서 잘 이겨내는 어른으로 컸으면 좋겠고, 배려심 많고 남들 잘 챙기고 베푸는 좋은 성격도 잘 지켜나갔으면 좋겠어. 힘든 와중에도 큰오빠 시험 챙겨준 거 참 대단하게 생각해. 디엔드답고 멋있더라.
그 힘든 과정을 겪어내는 네가 자랑스럽고, 회복을 응원할게. 누구보다 강한 내 동생 디엔드.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믿고 또 믿자. 3년간 이룬 작은 성장이 나중에 큰 무기가 될 테니 잘해온 만큼 앞으로도 잘해보자. 작은오빠는 믿는다. 사랑한다. 화이팅!
- 작은오빠
이 고마움 덕에 퇴원한 뒤에, 3일 정도 잘 지낼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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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까지 너무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버텨온 탓일까.
더 이상은 정말로 이겨낼 힘이 없는 걸까.
이번에 나는 아예 정신을 잃었다.
또다시 병원에 실려가게 될 줄은 몰랐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