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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죽기 전에 제 소원은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거예요

운명의 장난

by 디엔드

지난 화 | 15.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어. 미안해.



2024년 10월 29일.

퇴원 이후에 정신과를 가야 하는 날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날씨는 너무 좋았다. 버스에서 보는 하늘이 너무 맑고 예뻐서 사진까지 찍어뒀다.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나도 드디어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걸까!











그러나, 그 예상은 철저하게 망가졌다.


진료를 보던 도중에 의사는 내게 답답하고,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처음 다녔던 병원에서의 의사는 내 자살시도에 대해 본인이 책임이 없다고 얘기했고, 입원 도중에 본 의사는 너무 사무적이고 차가운 태도였고, 이번에 또 바꾼 의사는 나에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역시나 저는 실패자군요. 갱생불가 인생이네요.’라고 차마 말을 못 하고, ”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덤덤하게 얘기한 뒤 진료실에서 나왔다. 노력해 보겠다는 의사의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 다음 화에 나올 거 같은데, 이후에 이 의사의 노력은 정말 대단했다. 진료 시간마다 심리학 독서토론을 한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 커밍순..)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집히는 대로 알약을 다 삼켰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만큼 먹으면 진짜 죽는 거 아니야?‘싶은 양이긴 했다. 세 번째 자살시도. 이젠 마지막이길 바라며 자살예방상담 전화 109에 전화를 걸어서 모르는 상담원에게 유언과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아픈 삶이었어요. 절망적이었고요. 이젠 편해지려고 해요. 그냥 저 대신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난 그의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차마 아는 사람에게 말은 못 하겠고, 모르는 사람에게라도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사실 이 말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나 대신 행복하게 살아줘.”


직접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에게나 얘기한 거다. 난 죽기 전까지도 찌질하구나.


그렇게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전과는 다른 정도의 불쾌감을 느꼈고, 몸이 붕 뜨는 것 같기도 했다. 힘이 축 빠지고 초점은 흐릿해졌다. 그 이후에 누군가가 벨을 계속 눌렀고, 비틀비틀거린 상태에서 현관문을 열었던 것만 기억난다. 두 명이 서있었다.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처음엔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종교가 없다. 그럼 천국은 아닐 테고 소설에 나오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기계음이 들린다.

젠장.

현실이다.



말을 들어보니, 109 상담사 분이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고, 경찰관 분들이 쓰러진 나를 데리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고 한다. (의료파업 때문에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병원을 두군데나 갔다고 한다.) 나도 정말 민폐다..ㅠㅠ 그 당시의 일을 자세히 쓰고 싶어도 정말 기억이 안 난다. 약을 먹고, 누군가가 벨을 눌려서 현관문을 열었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썼던 일기다. 죽으려고 했지만,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브런치 작가되기


독자로 지낸 지 5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작가신청을 아마 10번도 더 했을 거다.


그러나, 매번 돌아오는 말은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우면 죽기 전에 제 소원 좀 들어주시던가요…라는 생각을 가지고 5년간 ‘작가의 서랍’에 있던 쾌쾌 묵은 글들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심장병 환자로 살아가는, 인공심장박동기를 달고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의식을 차린 뒤에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선생님과 꽤 오래 면담을 했는데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에 옐로카드를 의식적으로 남기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내가 꼭 괜찮아지길 바란다며,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밤이 되자마자 모든 링거바늘과 EKG 부착된 걸 뜯고 몰래 병원 야외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은 5층이었는데 난간에 걸쳐 앉아서 마지막으로 연락할 사람을 찾았다.


h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함께 해주신 분이다.

https://brunch.co.kr/@time-limit/68

이 글에 그 이야기를 담아뒀다. 중학생 디엔드는 h선생님 덕에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내 삶에서 정말 감사한 분이었기에 꼭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통화를 하는데 자꾸만 삶의 미련 같은 것들이 생기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이러면 안 된다. 급히 통화를 끊었고 난간에 올라섰다.


난간에 올라서면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자,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외부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내 마음속은 그보다 훨씬 더 차가운 얼음장 같았다. 내 안에서 무언가 굳어져 버린 듯, 그 어느 것도 따뜻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2024년, 그 겨울바람은 무척이나 차가웠고 위태로웠다. 드디어 편안해질 수 있는 건가. 사실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으악





그렇게 펑펑 울면서 망설이던 도중,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나를 확 끌어안아서 넘어뜨렸다. 너무 순식간이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어떤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 발견을 했던 거였다. 그 이후에 많은 간호사 선생님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셨다.


죽을 거라고 하며 별짓을 다했다. 난 지금까지 너무 힘들게 버텼고, 더 이상 견딜 힘이 없다고 얘기했지만, 알겠으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힘으론 역부족이었고 거의 반강제로 끌려나가며 제발 나 좀 포기해 달라고 얘기하며 계속 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살 운명이었나 보다. 세 번이나 자살시도를 했지만 결국 살았고, 마지막으로 올라간 옥상에선 누군가가 발견을 해서 뛰어내리기 전에 목숨을 지켰다. 드라마도 이렇게 쓰면 판타지라고 욕먹겠다.)


간호사실에 가서 많은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으며 있었는데,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왔다. 그는 화가 난 모습이었고, 나는 모든 걸 체념한 표정으로 퇴원시켜 달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알겠다고 퇴원하라고 했다. 퇴원절차는 잘 모르겠다. 아빠랑 얘기하더니, 그냥 짐 싸서 나왔다. 병원에서 자살시도를 한 건 아마 강퇴사유였을 거다.


그날이 입원 당일이었는지, 며칠이 지났던 건지 아직까지도 모른다. 물어볼 정신도 없었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살아있는 거에 대한 회의감이 컸을 뿐이다.





짐을 챙겨 들고 밖을 나오니 아주 깜깜하고 추웠다.

이젠 병원도 나를 살릴 생각이 없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기분.





무척이나 쓰린 상처.

그리고 절망.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메일이 하나 와있다.

브런치다.

하.. 보나 마나 또 안타깝..













응!???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세상이 나에게 장난치는 것 같았다.

죽기 전에 간절했던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 아마 그날에 정말 죽었더라면, 세상에 디엔드라는 존재는 나오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나에겐 “글 쓰는 삶”이 시작되었고,

삶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p.s. 지난 주에 연재를 못해서 오늘 올립니다. 제가 글 쓰면서도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놀랍게도 실화가 맞습니다.. ) 고된 순간이 찾아와서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봅시다. 이왕이면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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