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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새벽 두 시, 나 홀로 경찰서에 가다

덕분에 제 삶이 조금 더 연장됐네요

by 디엔드

지난 화 | 17. 내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


살다 보면, 경찰서를 갈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특별한 경우가 있지 않는 이상 경찰서에 갈 일은 거의 없을 거다. 나는 처음으로 경찰서를 가게 되었다. 그것도 새벽 2시에.


이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가족들에게 굳이 걱정을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 현타가 너무 세게 와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그날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지독하게 마음이 아팠던 순간에, 나에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준 어른들에게 감사하며, 우리의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해지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여전히 나의 밤은 너무 어두웠고,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다들어줄개"에서 채팅 상담을 받았다. 다들어줄개는 교육부가 함께 운영하는 SNS 기반 청소년 통합상담 시스템이다. 이 마음을 너무 감당하기 힘들어서 선택한 나름의 발버둥이었다. 채팅 상담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자꾸 답하기 힘든 질문들을 물어보셔서 그냥 대답을 안 했다. (온라인 상담은 1388이 더 나은 거 같다.)


폰을 끄고 누워서 이 막막한 기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새벽 2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냥 끊었는데, 3번 연속으로 전화가 오길래 받았다.


“지금 어디세요? 경찰입니다.”

(이 새벽에 제가 어디 있겠어요.. 그냥 방구석이죠..)


상담원이 내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서 경찰에게 신고를 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어디에 사냐고 물어보길래 답했더니, 지금 당장 본인들이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일단, 가족들이 모두 자고 있으니 경비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경비실 쪽으로 가니까 낯선 남성 두 명이 서있다. 경찰이다.


그들은 내게 물었다.


혹시 포도님이신가요?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러웠다. 다들어줄개에서 내 닉네임은 포도였다. 이렇게 사람을 만날 줄 알았으면 이왕이면 좀 멋진 닉네임을 쓸걸. 차라리 블랙사파이어 포도 같은 걸로 하지.


"아.. 네.. 제가 포도긴 한데요.. 본명은 디엔드입니다."

"아하.. 네..ㅎ (웃참)"


모두가 잠든 시간, 죽고 싶다는 17세 인간 포도와 야간근무를 수행하는 피곤한 공무원이 만났다.


일단 비가 오니까 경찰차에 타자고 하셨다. 난 괜찮다고 했는데 신고를 받은 이상 이대로 보낼 순 없다며, 상담기관이랑 전화를 하고 가라고 하셨다. 솔직히 상담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쳤다. 그리고 수술을 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상태라서 진통제가 없으면, 새벽을 견딜 수가 없다. 마약성 진통제를 삼켜야 했던 밤이다.


경찰은 상담사와 연락을 했는데, 지금 통화량이 많아서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 새벽에 마음 아픈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자살률 1위 나라답다는 생각을 했다. 파출소에 가자는 말을 들었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가게 되었다.


그 뒤로 경찰관 분께서 가족들의 이름, 전화번호, 집주소까지 물어보셨다. 대답을 안 하면 화를 낼 거 같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가장 의욕이 없는 나무늘보처럼 답했다. 그리고 제발 가족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아무도 모르게, 정말 아무도 모르게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경찰관 분께서 폰을 건네주셨다. 낯선 남성의 목소리. 상담사라고 한다. 대충 상황은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지금 기분이 어떠냐길래,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쳐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요.


돌아오는 얘기는 늘 형식적인 답변. "네, 목소리만 들어도 많이 지친 것 같아요."


현타가 심하게 왔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새벽 두 시?

경찰서?

상담?


'채팅상담에서까지 힘든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죽고 싶은 마음이 1부터 10까지 라면 어느 정도 돼요?"

"10이요." (왜 이렇게 솔직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든 이유가 있을까요?"

"세 번이나 죽으려고 했었는데, 못 죽었어요. 미련하게 살고 있잖아요."

"그럼, 일단 죽고 싶은 마음이 5~6 정도로 내려갈 때까지 통화해요."


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새벽에 할 짓이 아니다. 상담사님께도 너무 큰 민폐였고, 진통제를 먹지 않아서 점점 흉통이 세졌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경찰서에서 죽음을 얘기하는 장면도 참 별로였다. 모든 장면과 내가 내뱉는 단어들이 혐오스러웠다.




"솔직히 사람들이 왜 저보고 살아야 한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이 상황도 이해가 안 돼요. 제 목숨은 제건데요?"


(과거의 나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사춘기 반항소녀 같은 그 발언을 당장 취소하라..)


상담사님은 오래 고민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얘기하셨다. "디엔드님은 너무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이렇게 조금 대화해 봤는데도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제가 만약 디엔드님의 친구였다면, 오래 곁에 있고 싶을 것 같아요."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만하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잊고 지내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말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사실 그 당시의 나는 이 말을 듣고, 감사하다는 생각보단 밉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뭐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가. 부모님의 월급보다 병원비를 더 쓴 불효녀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그리고 더 이상 이 지구에 미련이라는 것을 두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나를 붙잡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살리려고 애쓰는 어른들이 싫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싫었다.




알고 보면, 나는 이 인생에 미련이 가득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죽고 싶은데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새벽에 채팅 상담을 받았던 거였고, 유서를 쓰면서도 나 없이도 잘 지내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적었다. 나의 진심은 정말 살고 싶으니까, 잘 살고 싶으니까 도와달라는 신호였던 거다. 자살 시도를 했던 건 그만큼 마음이 힘들었다는 뜻이고, 자해를 했던 건 알아봐 달라는 거였다.


그 뒤로 거의 40분 동안 상담사님과 통화를 했다.

"집 가서는 괜찮겠어요?"

"모르겠어요. 괜찮아야죠."

"그럼, 집에 돌아간 뒤에 안부차 전화해도 되죠?"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걱정돼서 저희가 안심하려고 그런 거예요."


통화를 한 뒤에 다시 경찰관에게 폰을 돌려줬다. 집까지 걸어가려고 했는데, 비 오는데 새벽에 혼자 갈 거냐고 데려다준다고 하셔서 경찰차에 탔다.


처음에 내게 포도냐고 물어봤던 분이 차를 멈춰 세우고 얘기를 했다.


"가끔 인생이 참 쓴 거 같아요. 그래도 아직 학생은 살아갈 날이 많잖아요. 제가 30대인데 솔직히 아직도 어른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여전히 철이 없기도 하고요. 그냥 사는 거예요. 그냥 살다 보면, 행복한 날도 종종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살아요.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해줄게요. 알겠죠? 힘내요!"


집 앞까지 내려주셔서 연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공동현관을 들어갔다. 고장 난 도어록 덕분에 가족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근데 이 도어록은 아침이 되니 고쳐져 있었다. 마치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나를 도와주는 것처럼.)





일기를 보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글을 썼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퇴원 이후의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고 따뜻했던 순간이었던 거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차에 타봤고, 경찰서에 가봤던 날이라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말은 정말 강력한 무기라는 거다.


말을 통해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사회는 점점 더 대혐오의 시대로 변해가고 있는 거 같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괜찮은 척하며 살기 바쁘지만, 혼자 있는 공간에서는 철저히 무너지는. 이 상황 속에서 나는 꾸준히 혼자서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이 브런치 북을 쓰는 목적이 공감과 위로였는데, 한편으로는 위로라는 단어가 성립이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위로의 정의는 따뜻한 말,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는 것이라는데, 내가 쓰는 이 글이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줄 수 있을까? 차라리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게 훨씬 더 큰 위로가 될 텐데 말이다.


과거의 나는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감성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내용은 다 비슷하다. 힘들 땐 쉬어가라는 것, 넌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그리 공감도 안되고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경험을 공유하는 거였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이 이야기를 글로 쓴 이유는, 내가 타인으로부터 받은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누군가가 붙잡아준 말은 정말 묵직했으니까.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늘 하게 된다. 매번 글을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지 고민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언제나 같다.


용기 내어 살아가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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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마지막 에피소드가 올라갑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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