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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내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

정신과 의사와 독서토론, 흉부외과 수술

by 디엔드

지난 화 | 16. 죽기 전에 제 소원은 브런치 작가가 되는 거예요


지난 화에서 삶을 이어나가게 되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이후에 죽음에 대한 계획을 자세히 세웠다. 여러 가지를 찾아보던 중에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인공심장박동기를 삽입한 환자의 경우에는 사망한 이후에 박동기 제거를 하고 화장을 한다고 한다. 배터리이기 때문에 폭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죽은 뒤에도 수술대에 올라갈 생각을 하니까 그 모습은 정말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능을 하지 않는 복부 쪽에 있는 심장박동기를 제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쇄골 쪽에 있는 박동기를 빼는 건, 모든 의사들이 반대할 거다. 이걸 빼면 내 심장 기능은 20~30%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선 살인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쇄골에 있는 박동기는 사망 이후에 차가운 수술대에서 뺄 수 있겠지. 아무튼, 내 시신을 감당할 집도의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어서 지금 온전한 정신일 때 수술을 받기로 다짐했다.


흉부외과에 갔을 때, 교수님은 굳이 안 빼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원한다면 수술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죽기 위해서 이 수술을 받는 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긴 상상도 못 할 거다.


세상에 죽기 위해서 수술을 받는 사람이 있긴 할까?

모두 그 반대일 텐데 말이다.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원래 다니던 정신과에 가야 했다. 병원 가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당시 상담 선생님의 권유와 가족들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다른 병원엔 이미 대기가 너무 길어서, 내게 답답하다고 했던 그 의사에게 다시 가게 되었다. 그는 병원에 몇 명 없는 전공의였다. 이미 나는 병원에 대한, 의사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닫아두었다. 노력해 보겠다는 그의 마지막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제 인생은 파묻혀버린 희망의 완벽한 묘지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물음에 나는 "잘 지냈어요."라고 답했다. (습관성 잘 지냄이다.) 차마 당신이 준 약을 모았다가 삼켜서 또다시 응급실에 실려갔었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이후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모든 질문에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의사는 어딘가 이상한 기분을 알아차렸다. 그는 꽤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뭐.. 이게 직업이니까) 굉장히 집요하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요?", "편하게 말해줘요."라는 말을 반복해서 했지만, 이젠 나도 눈치가 생겼다. 정신과 다닌 짬만 1년째다. 그래서 더욱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엔 수면제를 처방받기 위해서 병원에 간 거였다. 죽음을 계획했기 때문에. 20~30분 되는 진료시간 동안, 요즘 잠을 잘 못 잔다는 말만 하고 침묵을 유지하다 진료실을 나오길 반복했다.




어느 날, 도저히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는 나를 보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전공의는 하나의 제안을 했다.


3일에 한 번씩 같이 책 읽을래요?


책을 좋아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그의 제안에 솔깃했기에 "좋아요."라고 답했다. 처음이었다. 정신과에서 좋다는 긍정의 말을 꺼낸 건.



이 책을 읽고 3일마다 함께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 진료 텀은 일주일이었는데 3일로 줄어든 것이다. 독서토론을 하기로 했으니 책을 읽었어야 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을 읽는데 저자와 내 모습이 너무 소름 돋게 닮아있었다.


한 여성이 있다. 십 대 시절,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몸을 자해했다. 심각한 자살 충동을 느끼며, 심지어 깨진 안경알과 담배꽁초로 자해하기도 했다. (중략) 치료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병동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 지옥을 끝낼 방법은 죽음 밖에 없다며 약물을 사용해 두 차례 자살을 시도한다.


이 책은 변증법적 행동치료(DBT)의 창시자인 마샤 리네한의 이야기이다. 책의 제목처럼 지옥처럼 느껴질 때에 대한 대처 방법도 몇 가지 제시한다.


처음에 책을 읽을 때, 너무 괴로웠다.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았고 내 모습을 직면하는 거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느끼길 원했던 거 같다. 그렇게 초반에는 3일에 한 번씩 병원을 잘 갔다. 내 얘기가 아닌 책 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마음도 나름 편했다.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쌓인 뒤에 전공의는 다시 한번 더 내게 물었다.


요즘 어떤 마음이 들어요?


그때 처음으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게 되었다.

"사실 죽으려고 했었어요. 쓰러져서 입원도 했었고요.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요."


솔직한 마음을 꺼낸 뒤에 병원을 가지 않았다. 굳이 또 이런 얘기 꺼냈다가 상처받을까 봐 일종의 방어기제가 생긴 거다.

잠을 너무 못 자서 딱 한 번 갔었는데, 그 이후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빌려줬다. 책을 읽고,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병원에 가야 했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심리학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시기이다. (당시 읽은 책이 현재의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책을 읽고 다시 돌려주며, 곧 수술을 받는다는 얘기를 했다. 기능을 안 하는 인공심장박동기 제거 수술을 받을 거라고. 차마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수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후엔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다.


좋아하는 연예인 있어요?

- 아니요. 없어요. (나는 싱어송라이터 소수빈과 배우 유연석을 좋아한다.)


요즘 넷플릭스 보는 거 있어요? 흑백요리사 재밌던데.

- 아니요. 안 봐요. (그땐 진짜 유행에 관심이 없어서 안 본 게 맞다.)


추천해주고 싶은 음악 있어요?

- 딱히 생각이 안 나네요. (ajr-karma가 떠올랐었다.)


그러나 여전히 속마음을 얘기할 순 없다. 그의 노력에도 내 마음이 열리질 않았다. 다른 의사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수술을 앞두고 브런치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지 고민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나의 브런치스토리 연재글이었다. 죽기 전의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을까?


인공심장박동기(pacemaker)가 생각났다.


인공심장박동기는 주로 심장기능이 약한 노인 분들이 달고 계신다. 그러나, 나는 이 수술을 7살에 받았다. 후천성 심장병이 생겼고 잠을 잘 때, 맥박수가 30까지 떨어지는 걸 보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이후에 기계를 하나 더 넣었는데, 그동안 아무리 찾아봐도 이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다. 작은 가치 정도는 만들고 죽고 싶었다. ‘한 분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글을 썼다.



브런치북을 기획하고 글을 연재한 지 일주일 만에 "요즘 뜨는 브런치 북"에 올라가면서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셨다. 초보 작가에겐 굉장히 영광스럽고 운이 좋은 순간이었다.



7000명 가까이 되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심장박동기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하시니까 정말 신기했다.

처음으로 달린 댓글



키워드 유입을 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심박동기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검색을 해본 건, 환자 본인도 있겠지만 보호자나 주변 지인들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더욱 최선을 다해서 글을 썼다.


그렇게 수술 날짜가 다가와서 입원을 했고, 병원에서도 글만 썼다. 뭘 그렇게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냐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의 물음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라고 답했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죽음을 결심한 자에게 남은 사명감 같은 거였다.


전신마취 수술을 받고, 내가 바라던 복부 쪽 심장 박동기를 뺐다.


11년 만에 처음 봤다. 이렇게 생겼구나?


가슴을 절개한 수술이라서 그런지 경악스럽게 아팠다. 계속 마약성 진통제를 맞으면서 퇴원만을 기다렸다. 회복하고 나는 이제 바라던 죽음을 맞이하면 됐다. 그러나,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더욱 컸던 탓일까. 퇴원을 앞두고 병원에서 자해를 해버려서 병동이 난리가 났다.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기로 했는데..)


수술 직후에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계속 진통제 맞고 아파했지만, 어느 정도 진통제 효과가 나타나면 불안이 올라왔다.


입원 생활 중 5살 아이가 고열이 안 떨어져서 나와 같은 병동에 입원을 했고, 그 아이가 해맑게 웃는 소리가 자꾸 들렸는데 그게 정말 괴로웠다. 나는 너무 힘든데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니까 괴리가 느껴져서 새벽에도 1층 로비에 내려가서 울고, 정원에 가서도 펑펑 울었다. 17살이 무슨 5살에게 비교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 친구들은 밥만 잘 먹어도 칭찬을 받고, 혈압이랑 열만 재도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을 듣는다. 나는 그런 말을 커서는 도대체 언제 들어봤나 싶었다.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 거다.


결국 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 퇴원을 앞두고 자해를 했고, 간호사 선생님께 들키게 됐다. 그 이후 흉부외과 교수님은 나를 중환자실로 보내셨다…


당시에 간호사 선생님이 내게 해주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도 돼!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해주면 오히려 고마워할 거야", "그리고 지금은 더 무너지지 않게 의지할 때야."라고 해주셨다. 그때 느꼈다. 너무 혼자 참고 살지 않아도 괜찮구나,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도 되는구나. 그때 꽤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이렇게 죽음을 대비하는 게 맞는 걸까?




맨 정신으로 중환자실에 간 건 처음이었는데, 너무 무서웠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기계소리와 큰소리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사람들. 그 공간 속에 있는 나.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왔고, 귀마개를 껴도 분주하고 바쁜 소리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 그리고 누가 봐도 어린 여자애가 중환자실에 있으니까 다들 처음엔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참… 별의별 경험을 다 하는 거 같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을 걸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일 텐데. 2개월 동안 4번의 자살시도, 3번의 입원… 인생에서 가장 길고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회복한 뒤에 퇴원을 했고, 죽음을 대비하는 건 끝났다. 이제 마음 편하게 죽어도 될까?


퇴원 이후에, 새벽 2시에 나 홀로 경찰서를 가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가족들도 모르는 이야기이다.



신은 버틸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데, 날 이만큼 강한 사람으로 보신 건지 묻고 싶다.



제발 꿈이라고 해줘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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