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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심스 Jul 14. 2024

어떻게 살 것인가

2024년 7월 2주

지난 몇 주간의 고초를 토대로 나는 정말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봤습니다.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서 우러나 평안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자면 일단 나는 언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되짚어야 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길이 보일 것이니까요.


1.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기억나는 몇 가지 순간과 사물이 있습니다. 접이식 밥상에서 반죽해 끓여주었던 할아버지의 칼국수, 수박 화채, 할머니의 틀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교하던 길에 맡았던 골목길 개똥 냄새, 장마철 마당에 시원하게 내리던 빗소리, 여름성경학교 새벽 예배, 건넛방 아저씨의 스케치북 선물, 두껍고 포근했던 이불, 할아버지의 회색 플라스틱 덮개 메모장, 연두색 전화기, 약수터 올라가는 길에 잡았던 가재, 더운 물 끓이던 양철 빠께쓰, 호텔 가서 할아버지가 받아 온 글쓰기 최우수상 상장, 땀띠 나지 말라고 발라주었던 분 냄새, 할머니와 늘 잠시 들르던 제일시장 양말 가게 등등. 누구 눈치볼 일 없었고, 내 존재 그대로 인정받던 시절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었을 친절과 사랑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그것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2. 공부가 좋았다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했던 시절이 있습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말귀를 잘 알아들었고, 하다보니 잘해서 그냥 계속 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3학년 때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때때로 자만심이 되기도 했구요. 인정 욕구도 없지 않았겠지만 무언가를 알아가는 재미와 시행착오를 통해 더욱 나아지는 과정 자체가 주는 뿌듯함이 컸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고 원해서 했습니다. 그 점이 중요합니다. (굳이 하나 더 넣자면 수능도 포함해야겠지만 글쎄요. 제 기대 이상이긴했지만 고등학교 3년간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과정까지 즐거웠던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3.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와 예능

책보다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예능을 통해서 더 많은 간접 경험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드라마를 특히 좋아하여 드라마PD가 되고 싶다고 감히 생각하고 도전했다가 인생이 꼬였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비롯한 다양한 영상 콘텐츠가 제게 경험하게 해 준 감정, 상황, 관계는 저 어려운 꿈을 꾸고 싶게끔 만든 강력한 마력이 있었습니다. 자소서를 쓰며 어떤 프로그램을 왜 좋아했는지 숱하게 풀어놓아 여기서까지 그걸 반복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1998년 이후로 사람을 제외한, 아니 어쩌면 사람까지 포함하여 제 최고의 친구는 TV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가짜라해도, 편집된 허구라해도 지난 세월 제게 TV 콘텐츠만큼 즐거움과 위로를 동시에 준 대상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4. 사람들과 함께

저는 개인주의자이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에서 느끼는 행복도 큰 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보이스카우트에서 했던 다양한 활동이 즐거웠습니다. 2002 월드컵이 하던 해에 뒤뜰야영을 하며 같은 조 사람들과 준비했던 세레머니, 덕적도 캠프에서 먹었던 오이와 감자를 기억합니다.

군대는 너무 싫었지만, 신교대 시절 동기들과 함께하며 나눴던 교감도 생생합니다. 대학교에서의 체면차려야 하는 관계보다 오히려 저 스스로 더 가식이 없었습니다. 헤어지는 날 너무 아쉬워 자대에 가서도 한동안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자대도 큰 즐거움이 있었는데 그만큼 화나는 순간도 많아 신교대와는 또 달랐습니다.

이후 비슷한 느낌을 느낀 공간은 역시 학교네요. 기간제였지만 어쨌든 정식 교과 교사로 처음 일하였던 2019년이 특히 남다릅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 제가 아이들에게 되게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단단한 착각이었지만요 ㅋㅋ 하지만 설령 착각이었다고 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덕에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그 순간들을 소설로 생생하게 구현하고 싶은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일상에서 누린 행복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친구와 즐겁게 대화했을 때, 누군가 신나게 욕하고 마음이 시원해졌을 때, 여행에 가 기대 이상의 풍경을 만났을 때 등등. 이제는 빛바랜 것들도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저 즐겁고 따뜻하고 명쾌했습니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보자면 저는 이렇게 살고 싶은 듯합니다.

1. 충분히 사랑주고 충분히 사랑받는다.

2. 내가 하는(할 수 있는)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

3. 사랑하는 콘텐츠를 본다.

4. 사람들과 소통하고 추억을 쌓는다.


그런데 요즘 제가 괴로웠던 이유는 현재 3번 빼고는 모두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1, 2, 4번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1, 2, 4번까지 추구하면 제 삶은 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오늘 이 글쓰기를 하며 저는 조금 치유됐습니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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