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주
습기는 조금 덜하지만 따가운 햇살은 여전한 여름의 한가운데입니다. 이번 주는 알차고, 종종 즐겁고, 마음도 보통 편안했던 한 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던 고통(?)의 시간이 드디어 끝을 향해 가는 것일까요? 그것까진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일단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기록할 필요를 느낍니다. 또다시 비슷한 고통의 순간이 찾아올 때 들여다보기 위해서요.
내가 가진 성질과 내가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히 다릅니다. '나에게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가 성질에 관한 기술이라면 '나는 복숭아를 먹고 싶다.'는 지향하는 방향을 설명하고 있죠. 문제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으면서 복숭아를 꾸역꾸역 먹을 때입니다. 탈이 날 수밖에 없죠. 저의 혼돈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 저는 자유롭게 일하길 지향하지만, 조금만 풀어지면 한없이 게을러집니다. 그런데 대략적인 일정으로 일하고 쉬기를 반복했습니다.
2. 저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지만, 조금만 흥미가 떨어지면 가지 않을 핑계를 찾습니다. 그래서 기분 따라 운동을 하거나 안 했습니다.
3. 저는 교육인으로서, 콘텐츠 창작자로서 성과를 내고 싶지만, 한 가지 일에 1시간 이상 몰두하며 의자에 앉아 있는 게 힘듭니다. 그런데 강제로 1시간 이상 일하려 했고 매일매일 실패된 하루를 보낸 느낌에 시달렸습니다.
4. 저는 사람들과 적절히 소통하며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누리고 싶지만,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짐작하고, 내가 하는 생각과 감정을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를 반복했습니다.
5. 저는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지만, 이상보다는 현실 감각을 좇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원치 않는 방향임에도 일단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갈등했습니다. (예: 임용고사)
그런데 저 자신을 이해하고 삶의 만족을 찾았던 이전의 기억을 통해 혼돈에서 벗어날 힌트를 얻었습니다.
1. 저는 혼자 하는 여행이 잘 맞지 않습니다. 특히 긴 여행에서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즐거운 순간을 즐기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컨디션을 살펴야 하거나 각자의 주장이 여행의 소중함보다 커져버리는 지점은 그것대로 괴롭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제가 먼저 여행지에 가 있고 주변 사람들이 들렀다 가는 방식의 여행을 지난 2년간 시도해 봤습니다. 블렌디드 여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ㅎㅎ 완벽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성공적이었습니다. 혼자 여행하며 제 취향대로의 일정을 보내다 보면 즐거우면서도 심심합니다. 그러다 누군가 오면 괜히 반갑고 혼자가 아니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의 기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일행이 가면 약간은 아쉬우면서도 또 혼자 차분히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는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깊게 들여다보며 얻을 수 있던 방식이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여행해보고자 합니다.
2. 학교가 힘들다고 나와서 이러고 있지만 저는 스스로 학교에서의 일과가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보통 온종일 앉아서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서서 활동만 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요. 이것도 블렌디드일까요? ㅎㅎ 작년 기준 하루에 보통 4시간이 수업이었습니다. 4시간은 교실에서 수업하고 나머지 공강 때는 업무를 처리하거나 다음 진도를 준비하며 보냈습니다. 저 혼자 감당하기에 벅찰 때가 있어서 그렇지 이런 일과 자체는 좋았습니다. 수업만 계속하면 기운이 쪽쪽 빠질 것이고, 그렇다고 계속 앉아만 있다면 지루했을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저는 앉아서 하는 일과 서서 하는 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능률이 오르는 사람입니다.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요..?ㅎㅎ)
3. 저는 뭔가를 꾸준히 하는 일이 아주 힘듭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세가 좋다가 중간에 포기하거나 잠정 중단한 일들과 프로젝트가 수두룩합니다. (예를 들자면 <세상의 모든 선생님>?ㅎㅎ) 시작을 할 때는 기세가 좋고 희망적이지만, 생각지 못한 상황과 부닥치거나 흥미가 떨어지는 과정을 만나면 예전에는 억지로 넘었지만 지금은 흐름이 아니겠거니 하며 접습니다. 괜한 고생이 하기 싫어서요. 그럼에도 올 2월부터 시작한 외국어 공부 어플(스픽, 부수)은 오늘 기준 172일째 하루도 안 빼먹고 했습니다.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 단순하게 어플에 켜져 있는 불꽃이 꺼지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171일까지를 한 스스로가 기특한데 172일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런 마음으로 200일까지는 일단 무난히 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꾸준히 했다는 사실이 표식으로 명확히 인식되면 정말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걸 이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제 안에 있습니다.
위의 사례를 고려하여 저의 특성을 다시 한번 살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일상을 만들기 위해 나름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1. 어플을 깔고 챌린지와 루틴 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않게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매일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챌린지와 루틴으로 설정하고 매일 체크합니다. 대략 이런 것들을 설정해 보았습니다.
- 매일 헬스장 가기 (근 성장 어쩌고 핑계, 변명 사절. 걍 가기.)
- 매일 달리기 (위와 동일)
- 독서토론 지도안+학습지 제작에 1시간 사용 (자꾸 미루니까)
- 소설 10줄 이상 쓰기 (역시 자꾸 영감 타령하니까)
- 물 2L 먹기 (걍 몸에 좋을 거 같아서)
여기에 더해 마음을 보살펴 줄, 여기 쓰기는 조금 부끄러운 두 개의 루틴을 더 추가했습니다. 어제까지 9일 연속 불꽃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놓으니 좋은 게 뭔가 계속해야 할 일이 있어서 멍해지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자연스레 잡생각이 사라지고 다음 할 일을 어떻게 잘할지 고민합니다. 최소한으로 나를 점검할 장치를 마련하여 하루하루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이었다는 느낌을 주어 아직까지는 좋습니다. 일단 한 달 꾸준히 해보고자 합니다. 2학기가 시작되면 수업도 시작하니 더욱 역동적인 일정이 될 듯합니다.
2.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마음대로 추측하기 금지!
15년 전 방영한 MBC <선덕여왕>의 '미실'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후일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은 미실의 뛰어난 통찰력을 역으로 이용하여 그녀의 음해를 돌파하고 공주의 신분을 회복합니다. 미실이 지닌 통찰력이 본인의 내리막길을 여는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자기 능력에 자기가 속은 셈이죠.
이래저래 별 사람 많이 겪었다고 자부하며 저 또한 감히,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채는 능력을 어느 정도는 지녔다는 착각 속에서 살았습니다. 주변 상황을 눈치껏 관찰하고 행동하여 어느 집단에서든 우스운 꼴은 면했으니 100% 허언은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칭 갖춘 통찰력 덕에 괴로웠던 날들은 또 얼마나 많았게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과연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을 타인이 100% 알 수 없듯, 나 또한 다른 사람이 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을 100% 알 수 없습니다. 나이 든 어르신이든, 비슷한 또래든, 나보다 어린 학생들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저의 한 줌도 안 되는 직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짐작하고 추측하여 왔습니다. 이로울 때도 없지 않았겠지만, 보통은 상대가 나를 미워하고 무시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 의심하며, 단단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합리화할 수단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이용해 먹었습니다. 그건 참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들리는 말, 보이는 행동 너머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말만 번드르르한 경우가 많아 여기에 이렇게 써 놓고도 못 지키는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잘못을 또 반복하는 순간 찔리기 위해 일단 적어놓습니다.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마음대로 추측하고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3. 임용고사, 진짜 진짜 최최최종 안녕!
사범대 다니는 내내 뻥이 아니라 정말 단 한 번도 임용고사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드라마 PD가 되고 싶었습니다. 교생 때 살짝 흔들린 적이 있는데 그때도 임용고사를 보는 게 아니라 기간제로 학교에서 교사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떠밀려 정말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삶에 지는 것 같아, 다시는 꿈을 추구하는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거 같아 그것만은 피하고자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스물아홉 살을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도 그때 겪었던 상황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사탕 오래 먹으면 이가 썩는 법인데 따박따박 나오는 17일 월급의 안정감이 좋아, 또 아이들과의 교감이 좋아 4년을 더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일을 겪었고, 어느새 저는 이 꼴 저 꼴 안 보기 위해 임용을 봐야만 할 거 같은, 일하는 임고생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세 달 공부하고 가서, 한 번은 두어 달 공부하고 가서 시험 치렀습니다. 참 양심이 없었죠.
학교가 힘들어 나온 올해도 흔들렸습니다. 결국 받아줄 곳이 학교밖에 없을 거 같아서. 이런 시간이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그리고 교사를 했다고 하면 다들 잘 어울린다고 하는 말에.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1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게 고통스럽고, 더군다나 제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면 그 증세는 더 심해집니다. 공교롭지만 이전과는 다른 정도로 두통이 심해졌던 시기 역시 임고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면서부터입니다.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일까요? ㅎㅎ
왜 임용고사를 보고 정교사가 되고 싶었는지를 말하려면 기간제 교사로서 겪은 상황들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아야 하는데 그건 접겠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일이기도 하고, 거기에는 사실과 오해와 현실과 판단이 뒤섞여 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는 왜 임용고사를 정말, 완전히 접기로 결심했냐가 중요하겠죠. 1. 공부 능력이 부족합니다. 여러 번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중세국어를 공부해서 시험 볼 자신이 없습니다. 하루에 순공 8시간 채울 자신 없습니다. 2. 학교에 대한 환상이 없습니다. 임용고사를 치러내려면 학교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비록 5년 남짓 일했지만 그런 부분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원점으로 돌아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3.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재밌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도 재밌습니다. 영상을 만드는 일도 재밌습니다. 감당 가능한 선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다르게 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재밌습니다. 물론 괴로울 때도 있지만, 재밌을 때도 많습니다. 어디에 얽매여 있기보다 순간순간 제가 하고 싶고 재미를 느끼는 일을 벌여가며 살고 싶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제가 가진 능력을 활용하여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아, 하나 확실한 건 임용고사를 안 보겠다는 것이지 교사 또는 교육자로서의 길을 놓겠다는 것은 아님을 확실히 합니다.
방과 후 수업을 위해 오랜만에 독서토론 지도안을 만들며 재미를 느낍니다. 지도안과 학습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더욱 교육적 효과가 있을 발문을 만드는 일은 즐겁습니다. 즐거워서 합니다. 돈을 벌어야 해서 합니다. 도착지가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상황과 여건에 맞게 가르치는 일을 해나가겠습니다. 다시 학교에 돌아가면 또 그 안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쨌든 2019년 여름부터 제게 풀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던 임용고사 공부는 이제 진짜 진짜 최최최종 안녕입니다. 잘 가랏 ㅎㅎ
그간 밀린 얘기를 쓰려다 보니 글이 엄청 길어졌습니다. 두어 시간 넘게 걸렸는데 다행히 쓰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잘 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 상황을 한 번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지껄인 말을 당장 내일부터 지킬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일단 당장은 이렇다고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다음 주에도 루틴과 챌린지를 잘 지켜서 돌아온다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