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방학 #퇴근 #첫해
2023년 7월 5일 수요일, 첫 면담을 진행했다. 날은 화창했고 이야기는 뜨거웠다. 첫 선생님과 나눈 진솔한 대화를 통해 우리가 학교에서 무엇으로 인해 힘들고 또 행복한지 돌아봤다.
면담 대상자: 6년 차 역사 선생님 / 현 고등학교 재직
기록자: 5년 차 국어 선생님 / 현 중학교 재직
간단한 소개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에 임용됐고요. 현재 경기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1학년 담임입니다. 교과는 한국사랑 통합사회, 업무는 학년부 출결 총괄입니다.
이번 주는 안녕하셨는지요.
기말고사 기간인데 시험 보고 좌절하는 애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해서 속을 답답하게 하는 애도 있고…. 본인들 인생이니까 알아서 잘 살겠죠. 그냥 내 일이 아니구나 하고 바라보고 있어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방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따로 계획은 있으신지.
계획은 없고 (방학이) 절실해요. 진짜 애들도 보기가 싫고 동료 선생님들 하는 걸 보니까 방학할 때가 됐다는 게 너무 느껴져요. 딱히 계획은 없어요. 그냥 학교를 안 가는 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이야기 나온 김에, 교사가 방학에도 돈 받는 편한 직업이라는 여론이 있습니다. 의견 있으신가요?
저는 교사가 방학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설명해 주자면.
반대로 물어보고 싶어요. 방학을 줄 테니까 이 직업 해보겠냐고. 방학은 교사 일의 장점이 맞지만 저의 경우 이번 방학만 해도 무조건 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에요. 2학기 통합사회 수업 준비해야 돼요. 제 전공이 아닌 교과이기 때문에 방학 때 2학기 수업의 콘텐츠를 마련해 놓고 계획을 짜놔야 하죠. 그래야 2학기에 덜 힘들고. 방학이라고 쉬기만 하는 게 아닌데 방학 때 돈을 왜 받느냐 이런 말들은 이 직업에 대해 잘 모르고 쉽게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방학 때 학생한테 문제가 생기거나 학부모 연락이 오면 우리가 안 받나요?
받죠. 작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 상황 체크하고 보고했어요.
그럼 돈을 받는 게 맞죠. 방학 때 놀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려면 학생, 학부모 연락이 와도 안 받을 수 있어야죠. 그런 책임과 의무는 다 지워놓고 돈은 왜 받냐고 이야기를 하면….
평상시에 연가도 잘 못 쓰잖아요. 제 수업을 누군가 대체해야 하니까.
연가 못 쓰죠.
방학에 대한 다양한 의견 존중하지만, 교사로선 다소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쨌든 결론은 교사는 방학 없으면 힘들다.
방학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다.
퇴근하고는 주로 뭐 하세요?
운동하고, 맛집 가고, 지인들 만나고 합니다.
교사 장점 중 워라밸도 하나로 꼽히잖아요. 잘 지켜진다고 생각하시나요?
힘든 회사원들에 비하면 지켜진다고 생각하는데 아시다시피 시험 문제 출제나 생활기록부 작성 기간에는 집에서 일을 더 해야 하죠.
학교에선 수업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고등학교는 문제 출제나 생기부 작성으로 초과 근무를 달았을 때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지만 중학교는 아닌 경우가 있거든요.
그렇죠. 저의 경우는 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워라밸을 잘 유지하지 못했어요. 비단 문제 출제나 생기부 작성 아니더라도 학교 일을 집으로 가지고 올 때가 많았죠. 선생님은 언제부터 워라밸이 잘 유지되셨나요?
애들한테 질릴 때쯤 워라밸, 나아가 워라분(일과 삶의 분리)이 절실해지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쓰러져 자는 게 어느 순간 되게 한심해 보이더라고요. 다음 날 또 학교 출근하는 것에 초조해지고. 차라리 이럴 바에는 더 윤택하고 즐거운 무언가를 하자 생각했어요.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게 됐죠.
언제부터 운동을 시작하셨죠?
2020년 여름요.
3년 차에 일과 삶이 조금씩 균형을 찾기 시작한 거네요. 그러면 혹시 교사로서의 삶 이외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나요?
도망가고 싶어도 아직은 별다른 대안이 없어요.
최근에 교육대학원도 졸업한 걸로 알고 있는데.
네. 대학원을 했던 건 다른 교사에 비해 좀 더 경쟁력을 갖고자 했던 마음이 커요. 그리고 나이 들면 애들한테 외면받을 타이밍이 올 텐데 그때 진로 교과 교사로 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죠.
역사 교사로 일하는 지금 이후를 준비한 거네요. 시간을 되돌려, 임용고사에 합격했던 2018년으로 가보죠. 학교 발령을 받고 기분 어땠는지 기억나세요?
중학교로 발령이 났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뭔가 더 아수라장?
(웃음) 첫날부터?
네. 첫날부터.
애들도 안 만났는데요?
새 학년 연수 첫날 회식 자리에서 저 가운데 앉혀놓고 부장 교사들끼리 싸웠어요. 그리고 다들 대하는 태도가 ‘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남을래, 참 걱정된다’하는 눈초리들이었고. 그래서 도대체 학교가 어느 지경이길래 다들 나한테 이렇게 대하는 거지 싶었는데 3월 첫날에 모든 걸 알게 됐죠.
새 학년 연수는 좀 도움이 됐나요?
아니요. 별로 도움 안 됐어요. 그때 한참 밀었던 게 혁신 관련해서 학생들 ‘회복적 생활 교육’, ‘관계 형성 프로그램’ 이런 거였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생활하며 지켜야 할 기본 규칙에 대해서는 합의가 안 되어 있었죠. 그런 상태에서 학기가 시작하니 학교는 난장판인데 학생과의 관계 형성, 교사와 학생의 상생 같은 건 생각할 틈이 없었죠. 그게 다 무용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랬습니다.
새 학년 연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새 학년 준비에 집중이 되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죠.
그것도 그렇고 제가 근무했던 학교는 대부분 1인 전담 교과다 보니까 교과협의회가 의미를 지니기 어려웠어요. 협의가 진짜 효과가 있으려면 예를 들어 인근 학교에 있는 1인 교과 선생님들끼리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해야죠. 그런데 그렇지 않으니 각자도생 하게 되는 거죠.
게다가 첫해니까 더 몰랐겠죠.
시수도 이미 정해져 있고, 내가 받은 시수가 공평한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시수는 이미 전 해에 협의가 되어 오는 경우가 많죠. 결과적으로 새 학년 연수는 도움이 별로 안 됐다. 학교 현장의 실제 상황이랑 맞지 않았다. 업무분장은 어떠셨어요?
발령받고 학교 가서 교감 선생님이랑 인사하니까 교무부장님 와서 업무 희망원 쓰라고 주더라고요. 학교 일에 대해 아는 게 없고 거기 뭘 써야 할지 모르니까 전임자 인수인계할 때 물어봤죠. 희망원에 뭘 쓰는 게 좋겠냐. 전임자는 평가계 쓰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평가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왜 괜찮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 업무는 할 사람이 정해져 있었고 그래서 교무기획부의 봉사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방과 후 학교 계획 받았어요.
학교가 작다 보니까 여러 업무를 한꺼번에 받게 되셨네요. 발령받고, 연수받고, 업무도 받고, 이제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남아 있는데요. 아까 말씀하셨던 ‘모든 걸 알게 된’ 3월 첫날, 학생들 처음 보고 들었던 생각은?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되게 무질서하고…. 동물원에 새로운 동물이 들어와서 그거를 구경하는 느낌?
선생님이 동물이고 학생들이 구경하고.
첫 조회 들어가기 전부터 애들이 교무실 문 앞에 웅성거리면서 모여 있더라고요. 그리고 유리문으로 봐요. 인사도 안 나눴는데 4반 담임 선생님이 누구냐부터 시작해서 입학식 때 댄스 공연해야 해서 조회 못 들어간다고 얘기하고. 그거 듣고 ‘이거 좀 화를 내야 하는 건가?’ 생각하기도 하고.
학원에서 일하면서 중학생들을 경험한 걸로 알고 있는데 도움이 됐나요?
담임은 처음이라 조금 달랐어요.
교과로만 보는 거랑 담임은 아무래도 다르죠. 3월 첫날 새롭게 접하는 건 학생뿐이 아니죠. 나이스나 업무 관리 시스템(현재 K-에듀파인) 적응은 괜찮으셨어요?
사실 그런 프로그램들의 기능을 익히기 가장 편한 방법은 주변 선생님들께 여쭤보는 거예요. 그런데 너도나도 바쁜 상황이라서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학교가 은근히 뭐 물어보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그냥 매뉴얼을 많이 봤어요. 나이스나 업무 관리 시스템 매뉴얼 책자 보면서 기안하는 법 같은 거 익혔어요.
매뉴얼은 학교에서 지급해 준 거였나요? 아니면 본인이 찾은 거?
업무 관리 시스템 책자는 3월엔가 PDF로 왔어요. 그리고 교육지원청 가서 관련 교육받고 오라고 학교에서 출장 보내줬어요.
품의 등 공문 작성 때 놓치지 말 것 뭐가 있을까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면 작년 업무 담당자가 쓴 공문 찾아보기.
지원청이든 학교든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서 나이스랑 K-에듀파인 프로그램 사용하는 방법을 빠르게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담임, 교과부터 개인 업무까지 모두 관련되니까요. 그러면 만약 다시 2018년 3월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챙기고 싶은 것은?
보약.
(웃음) 기 빨리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3월 한 달이.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였는데 충분히 쉬지 못하고 바로 발령받아서 학교 현장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새로운 환경에 놓였고, 1인 교과라서 2학년, 3학년 수업 모두 준비해야 했고, 담임도 처음이었죠. 할 게 너무 많아서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다시 돌아간다면 약을 좀 더 챙겨 먹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더 쉬고 좋은 거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뭘 더 익히겠다든가 미리 해놓겠다는 건 따로 없으시고요?
어차피 학기가 시작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맞아요. 그거부터가 워라밸이죠. 워크는 학교에서.
아, 그리고 옷을 조금 더 많이 사둔다.
중요하죠. 애들이 옷은 물론 하다못해 슬리퍼까지 선생님 복장 엄청 보잖아요.
후줄근해서 좋을 건 없다.
돌이켜봤을 때 신규 교사로서 잘한 부분, 미숙한 부분을 꼽아주실 수 있나요?
음…. 지금 딱 생각나는 잘했던 부분 있어요. 제 기억이 맞는다면 개학 전에 1학기 학습지를 다 만들었을 거예요. 전임자 선생님이 주셔서. 미숙했던 부분은… 애들을 맞이할 마음가짐.
어떤 마음가짐일까요?
얘넨 아직 미성숙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다는 마음의 준비 같은 거죠. 돌발 상황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 상태여야 했는데 그 준비가 잘 안 되어있다 보니까 첫해가 되게 힘들었어요.
학생들이 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달랐다는 말씀이죠?
이 정도 상태일 줄 몰랐었죠. 그래서 그때 성질도 많이 부리고 화도 많이 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그렇게 나쁜 애들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그 당시엔 하나하나가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까….
공감. 저도 지나고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아, 생각보다 나쁜 애들은 아니었어.’ 이제 첫해 관련 마지막 질문인데요. 교생 실습을 할 때와 신규 교사로 학교에서 일할 때 어떻게 달랐나요?
가장 많은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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