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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17. 2024

기차를 탔습니다.

막 기차를 탔습니다. 바로 출발하지 않고 잠시 정차 중입니다. 곧 ITX-새마을호가 이 역을 통과합니다. 이 기차보다는 그것이 더 빠르기 때문에 보나 마나 먼저 보내려고 대기 중인 모양입니다. 승차 후 곧장 출발하지 않는 기차를 두고 사람들이 아침부터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가만히 보니 출발 시각이 늦어진다는 안내방송에도 태연한 건 저밖에 없는 듯합니다.


사실 제겐 기차를 타자마자 곧장 출발한다고 해도 아무런 메리트가 없습니다. 어차피 기차에서 내린 뒤에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학교로 가는 버스가 오기 때문입니다. 무리해서 택시라도 잡아 타고 가지 않는 한은 굳이 제 시각에 도착해야 할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은 제게 주어진 행운의 시간이나 다름없습니다. 고작 2~3분쯤인 이 짧은 시간이 저에게 하루를 계획할 틈을 줍니다.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먼저 처리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의 우선순위도 가려낼 수 있게 해 줍니다. 때로는 지금처럼 생각지도 않았던 쓸 거리가 떠오를 때도 있습니다.


이미 기차는 출발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좌석에 깊이 몸을 묻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몇 번의 비로 말끔히 씻긴 풍광들을 잠시 곁눈질합니다. 저렇게도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자연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숙연해 옵니다. 눈을 거두어 스마트폰 액정 위로 시선을 옮깁니다. 이젠 엄지손가락으로 부지런히 키패드를 두드려야 하는 순간입니다.


주중의 딱 한가운데인 수요일,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낼지 떠올립니다. 오늘은 수업이 다섯 시간밖에 없습니다. 1교시는 전담 수업 시간이라 아이들이 다른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으러 갑니다. 고요한, 텅 빈 교실에서 저는 물론 글을 쓸 것입니다. 수업이 다 끝나면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매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심폐소생술 연수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 연수로 인해 오늘은 오후 시간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아서 일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물론 텅텅 빈 학교 안에서 조용히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집에 있을 때보다 제겐 이 시간이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1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건 번거롭지만, 여차하면 컵라면으로 때우고 그 시간에 짧은 글이라도 한 편 더 쓸 생각입니다.


10분 뒤면 학교까지 가는 버스가 들어옵니다. 이제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는 신호입니다. 몇 방울 비가 내립니다. 아직은 우산을 쓸 정도는 아닙니다. 이 비가 얼마나 많이 올지는 알 수 없으나, 오늘은 어제보다는 덜 더웠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마음을 먹고 있는 것처럼 순탄한 하루를 보내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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