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 일흔두 번째 글: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 말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대구역으로 이동하는 중이었습니다. 15분이 지나는 동안 글감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치 바닥을 드러낸 쌀독의 밑바닥을 바가지로 긁어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월 들어 벌써 두 번째 있는 일입니다. 5분 안에 글감을 찾곤 했던 평소의 행동 패턴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종종 글감이 없어서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이만한 난관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긴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도 글감을 못 찾았다면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을까요?
많아봤자 한 달에 한두 번도 있을까 말까 한 일이 벌써 두 번이나 반복된다는 건 그다지 좋은 신호는 아닌 듯합니다. 게다가 2월이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는데 말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는 법,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앞으로 더 원활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아무리 고심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종종 혹은 자주, 글감을 떠올리는 데만 십수 분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한다면 과연 그런 글쓰기가 제게 즐거움이나 보람을 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보면 그동안 별다른 일 없이 글을 써 왔다는 사실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글감을 찾는 데에 조금도 애를 먹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가요? 글을 쓰려고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펼치면 거의 5분 내로 글감이 떠오르곤 했으니까요. 분명 그때는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글감이 없어서 글을 쓸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말입니다.
말이 난 김에 조금 더 밀고 나가 보겠습니다. 막상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어도 그럴 수 없는 꽤 많은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중에서 결정적으로 우리의 발목을 붙드는 건 대략 두 가지가 아닌가 싶네요. 하나는 바빠서 즉 시간을 못 내어서 쓸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쓸 거리가 없어서 못 쓴다는 것이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글 쓰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듯 시간이 없어서 글을 쓸 수 없다는 건 그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못 쓰고 있는 사람이나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같으니까요. 결국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에 달려 있는 것이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겁니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시간이 없다는 게 글을 쓰지 못하는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글감이 없는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네, 맞습니다. 글감 없이 글을 쓸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글감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글을 쓸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궤변이냐고요? 당장 저를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전 오늘 '쓸 거리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썩 내키지는 않아도 이렇게 한 편의 글을 기어이 쓰고야 말았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제게 한 며칠은 이렇게라도 글을 쓸 수 있다고 쳐도 앞으로도 계속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없던 것이 생겨날 리는 없을 겁니다.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면 됩니다. 일단은 발등에 당장 떨어진 불부터 끄면 됩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에겐 글감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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