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 일흔한 번째 글: 현명한 선택
오늘도 이른 시간에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알람 소리를 듣고 끄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자꾸만 더 누워 있어도 된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토요일인데 뭘 그리 빡빡하게 구냐며 달콤한 말로 제 안에 있는 제가 계속 저를 꼬드기고 있습니다. 기어이 온갖 유혹을 떨쳐 내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쨌거나 작은 싸움에서 이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아내는 제게 역마살이 들어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거라고 합니다. 뭐가 되었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루를 멍하게 날려먹지만 않는다면 어지간한 손가락질이나 비난쯤은 감수해 낼 수 있으니까요. 가장 한심한 것 중의 하나가 피 같은 시간을 허투루 쓰는 일입니다. 꼭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더 자거나 뒹굴거린다고 해서 쉬는 건 아니니까요.
지하철에 오르는 순간 고민이 시작됩니다. 두 곳을 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도 마음을 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두 곳 모두 공공도서관입니다. 한 곳은 지금 가면 문을 연 뒤에 입장해야 합니다. 제가 직장 인근에 있는 칠곡군립도서관입니다. 집에서 28.6km나 떨어져 있습니다. 다른 한 곳은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으로 10.6km 거리에 있습니다. 사실 누가 봐도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연히 가까운 곳에 가는 게 이치에 맞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줄곧 칠곡군립도서관으로 가곤 합니다. 그곳은 일단 집에서 멀어 지하철과 대경선을 탄 뒤에 도보로 25분을 더 가야 하지만, 멀다는 것만 제외하면 저같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이와 반대로 인근에 있는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은 가깝다는 것과 장서의 수가 많다는 점 외엔 모든 면에서 칠곡군립도서관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아, 물론 누가 생각해도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 월등히 더 낫습니다. 제 기준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에 지하철이 반월당을 지나 버렸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에 가려면 내렸어야 했습니다. 결국 지나치고 말았다는 건 이번에도 저의 선택은 칠곡군립도서관이라는 겁니다. 대구역에 내리며 대경선이 들어오는 시각을 확인해 봅니다. 8시 44분 열차를 탈 수 있습니다.
내려서 도보로 이동한다면 도서관이 이미 문을 연 뒤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전체 이용자의 수가 너무 적어 매우 쾌적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곳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언제 가도 노트북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오후에 가도 전체 노트북 좌석 중의 절반 이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가면 좋지만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침을 못 먹고 나와서 그런지 몹시 출출합니다. 어차피 몇 시간 안 있으면 점심을 먹어야 합니다. 왜관역에 내리자마자 늦은 아침이라도 한 그릇 하고 들어갈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밥까지 먹고 가도 10시 안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넉넉히 여섯 시간 정도는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집에 올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도 집을 나선 건 참 잘한 일입니다. 뿌듯한 하루가 예상되는 아침입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