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문갑을 닮은 서랍을 만드며
오늘은 결론부터 말한다.
과거의 제작자들보다 더 나은 상황 속에서 더 못한 작업물을 만드는 것에 속상하다.
나는 정확하게 재단할 수 있는 기계들과,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건조가 잘 된 단단한 나무도 있었지만, 사고들이 많았다.
조립 과정에서 왼쪽 하단에 있는 옹이를 반드시 아래로 향하여 바닥을 보지 않는 이상 보이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도미노를 위쪽에 뚫어 꼼짝없이 보게 되었다. 앞으로 매번 보며 방향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되길...
과거에는 홍송(붉은 목재) 혹은 나무에 열을 가해 검게 만드는 낙동 목재를 사용하여 가구를 만든 것을 재현하고자 했다. 토치질은 사실 정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 것 같다. 전용 다리미로 지지거나 가열실을 만들어서 불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열을 가한다고 한다.
토치질을 빼곡하게 하기보다는 하얀 목재 부분을 남겨 그 부분을 갈색 컬러 오일로 마감하여 울긋불긋하게 만들고자 했다. 결론은 나쁘지 않았지만. 토치질을 하는 과정에서 집성 때 사용했던 본드들이 녹아 나무에 길게 선이 생겼다. 샌딩을 하고 수세미로 긁어내며 노란 본드 자국은 없앴지만, 무슨 모발이식 한 것처럼 길게 뚜렷한 선이 생겨 슬펐다.
공간과 어울리는 것에 만족. 두껍닫이 문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잘 작동하고,
아 맞다 나무 구슬은 어디 갔냐 하면. 막상 달아보니 별로라서 노선을 급하게 변경했다. 막상 달아보니 되게 힘이 애매하고... 밀도도 애매하고... 벌레 알들 같기도 하고... 이럴 때는 혼자 생각하고 만드는 일이 참 자유롭다고 느낀다. 내가 만들고 내가 쓰니까 내가 맘에 안 들면 수정하고, 내가 만드니까 바로바로 수정사항을 반영하는 우수한 프로세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