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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스텔라 Oct 17. 2024

자연스러운 잔인함

Der Mensch

민달팽이 두 마리, 도마뱀 한 마리.

며칠 동안 내가 자전거 도로 위에서 죽인 생명들이다. 아마 더 작은 생명들은 수없이 죽였을 테다.


페달을 밟으며 바람을 가르는 순간, 발밑에서 느껴진 작은 충격에 시선을 돌렸을 때, 또한 너무도 짧은 거리로 인해 피하지 못하고 그 위로 지나버렸을 때 그 작은 생명들은 이미 내장이 터져서 죽어있었다. (미안하다..)


그런데 옷이나 얼굴에 달라붙는 작은 벌레들만큼은 참을 수가 없다. 짜증이 나서 손으로 털어내는 나의 이중성에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나온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내 편안함을 방해하는 존재들에게는 인내심이 없다.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지만 동물 복지에 힘을 썼던 히틀러와 내가 겹쳐 보이는 건 과장된 생각일까?

그는 동물에게 자비로웠지만, 수백만의 인간을 학살했다. 이런 그의 모순을 바라보며, 벌레 같은 작은 생명들을 무심코 죽이면서도 그 죽음을 애도하는 내 행동은 과연 위선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앗.. 괜히 철학적인 척을 해본다….!)


어쩌면 히틀러는 단지 인간이 가진 이중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인물일 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그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작은 것에는 연민을 느끼면서도, 더 큰 것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행동할 수 있는 그런 모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 무의식적인 폭력은 계속해서 벌어진다.

누가 더 잔혹하고 누가 더 자비로운지, 그 경계는 언제나 흐릿하다.

Getty Images / Roger Viollet
히틀러와 같은 잔인함이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 역시 그 일부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우리는 때로는 의도치 않게 주변의 작은 생명들을 짓밟고 살아간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는 이토록 사소한 사고가 매일 일어난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민달팽이나 도마뱀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길을 지나가던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두 자연스러운 일은 충돌했고, 그 결과는 그들에게 치명적이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작은 존재들이 더 이상 꿈틀거리지 않는 모습을 바라봤다.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고 나 때문에 생을 마감한 존재를 길 옆 풀숲에다 묻어주었다. 나의 무심함이 이토록 쉽게 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믿으며, 우리의 행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민달팽이와 도마뱀에게 나는 무자비한 파괴자임이 확실했다.


만약 내가 도마뱀이었다면, 나 역시 자전거에 깔려 죽었을까? 아니면 그들과 마찬가지로 큰 존재들에게 위협을 느끼며 숨어 지냈을까? 만약 내가 민달팽이라면, 그 느린 몸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하는 나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바퀴에 깔렸을 때 느낌이 어땠을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런가 하면, 내가 죽인 생명들을 수습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생명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도로에서 로드킬 당한 고슴도치, 다람쥐, 새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엔 ‘누군가가 묻어주겠지’ 하고 지나가지만, 나중에 다시 보면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내장은 여기저기 튀어나와 원래의 모습은 사라진채로.

나는 그럴 때면 그 가죽을 도로에서 떼어내어 옆 풀숲에 묻어주었다. 여전히 그때 생각이 나고, 내가 묻어준 풀숲이 과연 안전한지 궁금하다. 두 번 세 번 죽이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어서랄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특권 속에서 나는 때때로 다른 생명들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간다. 이런 무심함이 나를 이기적인 존재로 만든다. 내가 죽인 생명을 풀숲에 묻어줬다는 변명으로 죄책감을 덜고 나는 금세 또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Der Mensch ist das schlimmste Wesen,
aber das gnädigste Wesen der Welt.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자,
가장 관대한 동물이다.)
Getty Images / Roger Vio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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