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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Jul 29. 2024

어린이집 안전보안관

마녀사냥

2022년 4월 나는 도서관에 공부하러 다니면서 군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옆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다녔다. 우리 동네에는 도서관이 없어서 옆동네까지 30분 정도의 거리를 가야만 했다. 그렇게 기운을 빼고, 도서관에 앉아있으면 꾸벅꾸벅 졸음이 왔지만 매일 한장씩이라도 책을 보는 것 만으로도 대견하다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던 어느날, 도서관 열람실에 갔더니 어떤 아저씨가 마스크도 안낀 채로 계속 콜록 콜록 하는게 아닌가. 속으로 진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총을 주니 마스크를 끼기는 했다. 나는 그날 뭔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지만 마스크를 한번 더 꾹 눌러쓰고, 공부에 집중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_집에서 자려고 누웠는데, 목이 째르르 하면서 아프기 시작하더니 미열이 나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불길한 예감이 여지 없이 현실로 다가와 버리고 만거다. 다음날 그냥 단순 감기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고,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7일간 격리 생활에 들어갔고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증상은 가볍게 지나갔다. 물론 빨리 나으려는 노력도 했다. 물을 하루에 2리터 넘게 마셨다.

 

코로나 완치 이후 달력을 보니 5월 첫주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순간 뇌리속을 스쳐 지나가는게 있었다. 일년에 한번 밖에 없는 시험 접수 날짜를 놓친 거다. 뜨아악~~~그렇게 일년이란 시간이 붕 떠버리니 순간 멍해졌다. 그래서 생각한 일이 아르바이트였다. 나는 구청 홈피에 가서 혹시 내가 지원할 곳이 있는지 살폈다. 그때 어린이집 안전보안관 모집이라는 글제목이 가장 눈에 띄어서 들어갔다. 업무내용을 보니 원내 환경정화, 살균 소독 업무여서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구청에 지원했고, 얼마 안있어서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2022년 6월 그렇게 해서 마녀를 만나게 된 거다.


마녀는 첫날 엄청 친절했다. 할일만 하고 일찍 끝내줄테니 부탁한 일들만 잘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어린이집 화장실 두곳과 교회 화장실 두 곳 총 네곳의 화장실 청소를 부탁했다. 그도 그런것이 어린이집이 교회부설이어서 붙어있다 보니 애매한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지만 어린이집은 내가 해야 하는게 맞지만 교회까지는 내가 왜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소독이나 방역 업무에는 인력이 필요없어요. 손소독이나 그런건 아이들이 다 알아서 하고...우리한테 정말 필요한 일은 화장실 청소랑 현관 청소예요~그대신 일이 일찍 끝나면 근무시간보다 일찍 끝내줄 테니 가서 공부도 하고 해요~내가 공부하려는 사람은 적극 지원해주고 싶어요~~~"


나는 그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갔다. 그래도 공부를 병행해야 했기에 이만한 자리도 없다고 생각해서 마녀의 조건을 수락했다. 공황장애가 오기전 내가 했던 일은 사회복지사였다. 그 후로 현업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카페일을 하기도 하고, 공공근로로 아르바이트를 계속 이어왔다. 한마디로 난 정규직을 접어두고, '내 마음챙기기'를 우선시 했다. 화장실 청소라_태어나서 집청소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내가 화장실 청소를 맡게 되었다. 마녀는 내게 청소도구와 락스를 주었다. 나는 락스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조차 몰랐지만 어떻게든 시도했다. 그러고 나서 첫날 내가 좋아하던 티셔츠는 영원히 이별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마녀는 그게 안쓰러웠는지 좀더 순한 락스세제라는 걸 사주었다. 좀 어설프게 시작했지만 한달여의 시간이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이 업무를 맡게 되고서도 처음에 난 화장실 청소도 업무범위에 들어가는게 맞는지 의문이 들어 구청에 문의를 하였고, 환경정화 업무도 들어가니까 업무범위에 들어가는게 맞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더이상의 의문은 품지 않았고,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서 반짝반짝하게 청소를 했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고 7월초 딱 그 무렵 교회 쪽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마녀가 찾아왔다. 그러더니 대뜸 이러는 거다.


"지금 조리실에 인원이 부족해서 혹시 재료 손질하거나 하는 것 좀 며칠 도와줄 수 있어요?"


참 나 어이가 없었다. 갈수록 태산이군. 이러다가는 점점 더 할 일만 늘어나겠군.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이란 걸 했다. 그랬더니 마녀의 표정이 스윽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하루에도 몇번씩 와서 말을 걸던 마녀가 나를 봐도 본체만체하고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나는 인사정도만 친절하게 하고 내 업무에 충실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고 마녀가 원장실로 나를 불렀다. 나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마녀의 원장실로 갔다.


"핑거래빗 선생님...나는 핑거래빗 선생이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근무도 일찍 끝내주고 최대한 편의를 봐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시키는 업무를 거절해서 정말 마음이 상했어요. 그래서 말인데 근무도 원래 시간대로 하고 밖에 화분에 물주기 등 일까지 맡아주고 어르신들 풀 뽑을때도 같이 나가서 일해요~"


마녀는 나에게 벌을 주듯 일거리를 늘리고, 시간도 자기가 좌지우지 했다. 나는 원래 내 업무시간대로 하는게 당연히 맞다고 생각했고 더이상 휘둘리기도 싫어서 알겠다고 했다. 그후로 나는 12시 근무시간을 딱딱 지켰고, 내 업무를 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했다. 그러니 마녀도 할말은 없었다. 


마녀의 성은 교인들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고, 매일 화장실이든 원내든 데모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사실 그걸 매일 제거하고 청소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6월부터 11월까지의 근무기간동안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내가 목표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여행을 가고 싶었다. 


'목표한 것만 생각하자.'


출근할 때면 계속 그 말을 되뇌었다. 마녀 따위는 생각지 말고 목표한 것에만 충실히 하는 거다. 매달 세금떼고 90만원 정도 벌고, 6개월이면 생활비 등 빼고도 꽤 모일 거라고 생각하니 일은 고되었지만 보람있었다. 




어느날이었다. 화장실에 있는 스티커들을 다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화장실 전면이 스티커로 다 도배가 되어있었다. 나는 솔직히 너무 막막했고, 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오히려 난 스티커 스프레이까지 써가며 근무시간이 지나서까지 다 제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마녀나 주임선생님은 더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그렇게 까지는 할 필요 없어요. 그냥 대충하고 가요~"


마녀와 주임선생님은 계속 왔다갔다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마도 혹시 구청에 민원을 넣거나 하는 등 후한이 두려웠겠지. 나는 속으로 통쾌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복수는 면전에 대고 속시원하게 소리치고 욕하는게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쩔쩔매게 만드는 거다. 원래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였지만 오후 2시가 넘을 때까지 땀흘려 가며 스티커 제거 작업을 했다. 스프레이 냄새가 엄청 독했고, 농촌에서 쓰는 농약 살포 마스크까지 쓰고, 온몸을 무장까지 했으니 할말이 없었을 거다. 


마녀는 그 후로 나에게 감동했다며 선물을 조공했다. 그리고 일할 때마다 와서 한가지 일을 더 늘리더니 이제는 더이상의 터치를 하지 않았다. 이제 마녀의 레이더에서 벗어난 거다. 더이상은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나머지 두어달 정도는 편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맡은바 일에 최선을 다했고, 화장실도 매일같이 물청소와 살균 소독을 했다. 주임선생님이 집에서도 그렇게 깨끗하게 사냐면서 너무 열심히 하니까 걱정이 될 정도라고 했다. 선생님이 가고 나면 우리들은 그렇게까지 못할 텐데 어쩌냐며...



   




근무 종료 일주일 전_마녀는 나를 또 원장실로 불렀다. 나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겁이 났지만 덤덤한 척 하며 원장실로 갔다. 


"저기 그...구청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한달간 연장을 할 수도 있대요~ 그래서 말인데...한달 더 해줄 수 있어요?"


11월말 점점 더 추워지기 시작했고, 장화 속으로 서서히 냉기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나는 12월까지 근무는 무리라고 생각했고, 마녀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고 싶었다. 


"원장님~ 어쩌죠? 제가 계획한 일들도 많고 그건 좀 어렵겠네요~저도 더 하면 좋겠지만 죄송해요..."


마녀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 또한 사실 복수였다. 내 빈자리가 철저하게 느껴지게끔 엄청나게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라지면 그 빈자리가 크게끔 반짝반짝하게 청소했다. 그건 노인일자리로 오셨던 어르신들도 인정하셨던 거다.


어르신들은 그러셨다.

"아니~ 뭔 놈의 청소를 그렇게 매일 열심히 해~ 그러다 몸 상해~대충 눈치껏 해~"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근무 며칠전 주임선생님이 오더니 황당한 말을 했다.


"핑거래빗 선생님~ 그럼 혹시 다른 사람이라도 데타로 부치고 그 사람한테 월급을 넘겨주면 되지 않아요?"


이건 무슨? 그래도 주임선생님은 믿음직 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밥에 그 나물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약은 수작을 할 수가 있지? 


"어...그건 좀...어렵겠네요..."


나는 거절했다. 내가 왜 마지막까지 그들의 편의를 봐줘야 하나 생각했다. 내가 할 일도 아닌데 6개월간 교회 청소까지 했는데 한계치가 극에 달했다.



드디어 마지막 근무날_마녀는 아이들 앞에서 선물 증정식을 하며 사진을 남기고 싶어했다. 나는 그에 응했다. 어짜피 마지막 날이니 뭘 하든 간에 다 수락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러려 그런건 아닌데 마녀와 맞인사를 하는데, 내 단단한 머리로 마녀의 코를 박아버린 게 된 거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만 마스크 너머로 마녀는 코가 많이 아픈 듯 했다. 나는 연신 괜찮은지 살피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통쾌했다. 뜻하지 않은 복수를 하게 된 거다. 그동안 그렇게 신데렐라처럼 괴롭히더니 아주 속이 다 시원했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녀의 성을 나왔다. 


그 후로도 그 앞을 지날 때면 '마녀의 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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