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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거래빗 Aug 26. 2024

도배집 아주머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동안의 세월의 흔적인 건지 벽지가 많이 더러워졌다. 그래서 엄마의 권유도 있고 해서 집안 분위기도 바꿔볼 겸 해서 도배집을 알아봤다. 그러다가 기왕이면 동네 도배집에서 할까 하고 집근처 도배집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에 집 부분도배를 하려고 하는데, 견적 좀 볼까 해서요~"


"예~ 거기가 어디신데요? 대충 그럼 어느 부분 할 건지 얘기해 볼래요? 사진을 찍어줘도 좋고~"


"저 죄송한데 직접 와주시면 안될까요?"


"에잇~ 사진 찍어줘요~ 사진 한번만 찍어주면 되는데 귀찮아요?"


그때 감지했다. 무료 견적이라고 말만 써놓고는 직접 와서 보는 것은 '귀찮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도 나는 마음먹은 김에 도배를 해버리고 싶어서 도배집 아주머니가 하라는 대로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견적은 생각보다 적게 나왔고 그러면 그렇게 진행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도배집 아주머니는 본인이 바쁘다면서 도배사를 직접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또 기다렸다. 도배사 아주머니는 오기로 한 날이 되어도 안왔고, 도배집 아주머니는 전화를 해도 전화를 자꾸 안받았다. 그러고 나니 또 일주일이 흘러가 버렸다. 나는 자꾸 일정이 지연되니 그냥 차라리 다른 집에 맡겨야 되나 하고 옆동네 도배집으로 전화를 했다. 


내가 사정 이야기를 하니 옆동네 사장님은 이렇게 답변했다.


"아마 은근슬쩍 피하고 싶은 것도 있을 거에요. 부분도배가 사실 돈도 안되고 입주도배 아니면 잘 안하려고 해요."


그래서 나는 옆동네 사장님께 대충 도배 견적을 물어보니 또 이 사장님은 도배사를 한명 더 써야 한다면서 비용을 더 쎄게 부르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원래의 도배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최대한 좀 빨리 와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겨우 그 다음날 저녁 도배사 아주머니가 오셨다. 도배사 아주머니는 오더니 줄자를 쭉쭉 뽑아가며 시원시원하게 재단을 했고, 도배지 선택만 우리에게 맡겼다. 나는 도배사 아주머니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기에 믿고 맡겨도 되겠다고 확신했다. 





도배 당일, 


도배사 아주머니는 일찍 오셨다. 나는 일하고 있는데, 옆에 있기도 뭐해서 음료수와 마실거리만 남겨두고 집근처 편의점에 나와 있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그래도 한번 잘되고 있는지 가서 봐야 되는 것 아닐까 하고 집에 가봤다. 


방 한칸은 이미 도배가 되어 있었고, 아주머니는 다른 쪽 방 벽에 지저분해진 도배지를 뜯고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오후 2시면 끝나는 일이라 점심식사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께서 이러시는 거다. 



"저기 나 라면 하나만 끓여줘요~"


'앗...'


나는 순간 고민하다 그래 마음을 크게 쓰자 하고, 중국집에 전화해서 짬뽕하나 짜장하나 같이 시켜서 도배사 아주머니와 같이 먹었다. 헙...나는 그래도 라면 끓여주는 건 그렇지 않나 하고 시켜드렸는데, 절반 이상을 남기는 거 아닌가. 이건 뭔...그냥 진짜 라면을 끓일 걸 그랬나...


도배사 아주머니는 입이 고급이어도 너무 고급이었다. 어쩔 수 없지 라는 마음에 남은 짬뽕을 개수대에 버리고 나는 또 일이 있어서 나갔다. 


"다 끝나고 가실 때 전화 한통만 부탁드려요."





그러고 나서 아주머니는 전화가 없었다고 한다. 집에 와보니 도배는 끝나 있었고, 문이 반쯤은 닫혀 있었다. 전체를 살펴보는데, 부분적으로 잔얼룩들이 꽤 많았고, 도배 상태가 그리 깔끔하지가 않았다. 




"에휴..."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던 도배는 마무리까지도 좋지 않았다. 




며칠 뒤, 


'아니, 결제도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내달라고 해야 하는 건가?'


이틀이 지나도 결제 문자가 오지 않으니까 나는...'그래_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 심술이 잔뜩 생겨 버렸다.

나는 저녁이 되어서 도배집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럼...결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제가 지금 어디 갔다 들어가는 중이라...집에 가서 도배사 결제정보를 넣어줄 테니까 거기로 결제 좀 부탁할게요~"


그날 저녁도 결제 문제가 오지 않았다. 


'아~ 뭐...내가 급한가? 그쪽이 급하지..."


그 다음날 오후가 지나서야 결제문자가 왔다.








나는 소심한 복수를 시작했다. 


문자만 넣었다.


(도배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부분 얼룩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결제는 내일 오전중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문자만 넣어놓고, 결제를 하지 않았다. 하하

연락을 해도 연락이 안되고, 도배 상태도 결국 이렇게 된데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실컷 속을 썩인 후에 결제를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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