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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남편, 한국에 가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by 아브리

처음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엄마가 조심스레 내건 조건 아닌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에서 어학당을 다닐 것."


그 조건을 결혼한 지 1년 반 만에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연세 어학당에 입학 신청서를 내고 한 학기를 다니기로 한 것이다. 마침 일을 그만 두어 여유가 생긴 나와 남편 쪽 회사의 배려로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언어 공부와 더불어 결혼식을 미국에서만 올려 한국 식구들에게 인사드릴 겸 여러모로 필요한 한국행이었다.




어느덧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하루를 꼬박 지내고 새벽에 한국에 도착했다. 사실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이 짧다 보니, 나도 남편만큼이나 한국이 낯설 때가 많다. 잠시 헤매다 공항버스 티켓을 잘 끊었다고 좋아했으나, 섣부른 판단이었다.


버스를 잘 못 탄 것이다.


왠지 모르게 찝찝한 마음에 타기 전 기사님께 재차 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이라 다들 피곤하셔서 실수하신 것 같다. 어찌 된 일인지 버스는 삼십 분간 공항 주변만 돌다 다시 정류장에 정차하였다. 낌새가 이상하여 다시 여쭤보니, 여기가 아니라며 다른 버스를 그냥 타라고 일러주셨다. 부리나케 이번엔 제대로 된 버스에 출발 직전 올라탔다. 천만다행이었다.


한두 시간이나 지났을까?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렸으나 숙소까지 가는 길을 알리가 없었다. 도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우리 부부는 공항에서 로딩을 시켜 놓은 구글 맵을 키고 (공항버스에서 와이파이가 연결된다고 나중에 들었지만 이땐 몰랐다.) 더듬더듬 지도를 따라갔다. 한 삼십 분 거리를 한 시간 넘게 돌아간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꼬불꼬불한 언덕길이라 남편은 무거운 캐리어 두 개를 이고 지며 언덕을 올랐다.


돌고 돌아 숙소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만큼 컸다. 깜깜한 새벽에 공항을 나섰는데 벌써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숙소에 들어서자, 먼저 한국에 들어와 계신 엄마가 우리를 반겼다. 맛있는 감자탕이 보글거리며 준비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락함이었다. 알고 보니 엄마는 우리가 언제 오는지 몰라 정류장까지 택시만 두어 번 타고 왔다 갔다 하셨다는 웃픈 이야기와 함께.


엄마의 얼굴을 보니 정말 한국에 도착했구나, 싶었다.


감자탕을 먹고 씻은 후, 곧바로 핸드폰 개통을 하러 나갔다. 선불폰을 개통하려다 보니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거기다 남편은 여권을 두고 온 바람에 그다음 날 다시 가야 했지만, 그래도 일단 나라도 핸드폰을 해결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길거리에 빼곡한 상가와 편의점, 그리고 먹거리.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편리함이었다. 사실 남편은 이번이 한국이 두 번째인데, 대학생 시절 2주 정도 짧게 방문한 거라 많이 아쉬웠다. 물론 아쉬운 대로 분명 좋은 경험이었지만! (결혼 전 짧게나마 한국에 들른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나름 한번 와봤다고 저번보다 편안해하는 남편을 보니 웃겼다. 이번에는 어학당을 다니며 장장 3개월 동안 한국 살이를 하게 될 것이니 한국을 제대로 맛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한국 살이를 결정한 건 남편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 또한 남편만큼이나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내가 잃어버린 가족과의 시간을 되찾는 것.


나는 어릴 때부터 해외에 나가 살며, 이른 나이에 기숙사 생활을 했고, 일찍이 결혼까지 했기에 언제나 내가 놓친 가족과의 시간을 실감하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 이를 테면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와 저녁을 짓는다거나, 문득 생각난 시골 할머니 집에 버스 타고 내려가는 그런 평온한 날들이 — 나에게는 당연하지만은 않다.


가져본 적 없기에 정확히 무얼 놓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중에 나에게 주어진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한국행에서 가족들에게 남편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자주 볼 수 없는 한국 식구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힘이 닿는 만큼 섬기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였다. 타지에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관계형성을 할 시간이 부족해, 어렵게 만든 시간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더군다나 해외 사시는 부모님과 남동생까지 때맞춰 한국에 들어오기로 했기 때문에 이렇게 모두가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일은 흔치 않았다.


두 번째 목표는 시댁 식구들을 모시는 것이었다. 이번 기회에 미국에서부터 시댁 식구들이 한국에 방문하러 오시기로 했다. 총합 한 달가량 머물기로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관광 안내를 자처했다.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였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토록 다시없을 소중한 시간에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작정으로, 한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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