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둔 지난 4월부터 무려 네 달 동안 나는 완전한 백수로 살았다. 다행히도 8월부터 12월까지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반백수 생활을 겨우 이어갈 수는 있었다. 남은 기간 동안 풀타임으로 근무할 마음은 있었지만, 12월에 출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단기간만 일할 수 있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어느덧 11월 말일이다. 곧 출국 후 4달 동안 나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방랑자의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렇게 나는 1년을 꽉 채워서 백수와 가까운 삶을 살 것이다. 일을 그만둔 때부터 현재까지도 나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조금만 마음을 놓치면 스스로가 얼마나 만족스럽지 못한 지 되뇌게 돼버린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분명 그만큼 이룬 것도 많은 나날들이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 숨이 벅차도록 바쁘지 않으니 죄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하루를 채워도 숨을 편히 쉴 수 있었기에. 불안감이 엄습해오기도 했다.
그렇기에 기록하기로 했다. 돈벌이를 제대로 못할 뿐, 나름 빈 공간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종이에 달력을 출력해 하루하루를 적어내고, 일상적인 순간을 모아 브런치북으로 엮었다.
나 스스로의 가치를 내 안에서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세상의 기준에 걸맞은 사람이 되지 못해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싶다. 빈 공간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 그만큼의 그릇은 못되나 보다. 비워낸다고 비워냈지만 아직도 비워내는 게 너무 두렵다.
아직 짧은 인생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그저 숨이 턱 끝까지 차면 인생을 허비한다는 죄책감 따위 들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넘어져버렸다. 넘어졌기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막연히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곧바로 털고 일어나 달리지 않는 나였다. 안일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무기력함이 몰려와 한순간에 나를 덮쳤다. 그 모습에 나는 몹시도 당황했다.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해도, 노력해 보려고 해도, 잘 안 됐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부족한 탓이라고 여겼다.
이상한 일이었다.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친구 곁을 자그마치 6년을 지켰다. 매일을 함께 하고, 위로하고 같이 부딪히다 되살아나며 배운 것이 많았는데. 분명 그랬는데, 나 스스로에게는 응원 한마디도 아까웠다.
이 쉬운 걸 못한다니, 하며 혀를 끌끌 찰뿐이었다. 나의 약점을 가장 잘 아는, 가장 큰 적은 나였음을. 그러나 괴로운 밤들의 연속이 지나가고, 시간이 약인지 나도 조금씩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지금 쉬어가는 이 시간이 나에게 약이 되고, 기회가 되는 것이란 걸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분명한 건 지금 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의 배려로 큰 걱정 없이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생각지 못한 의외의 일들에 도전하고 있고,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 나의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백수의 심심한 취미생활>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