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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에 “교수님” 소리를 듣다

함께 수업을 듣던 학생을 가르치게 된 이유

by 아브리 Jan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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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대학 교수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 안식년을 가지시게 되는데 , 한 학기 동안 유기화학 실험과목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 하셨다. 혹, 가르쳐보지 않겠냐고.


강의 부분은 다른 분이 가르치실 예정이고 나는 실험 부분만 가르치면 되었다. 하지만 갓 대학을 졸업한 내가, 겸임 교수 (adjunct professor)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과제와 성적을 내주는 일은 당연히 부담이 되었다. 심지어 유기화학은 못해도 2학년이 듣는, 3학년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이만큼 좋은 기회도 없었다. 어쨌거나 나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리란 사실은 틀림없었다. 일주일에 2-3번 정도만 가면 되는 파트타임 일인 데다가, 곧 출국 예정인 나에게 딱 한 학기만 일하면 된다는 사실은 굉장한 메리트였다.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기도 어려웠다.


짧은 고민 후 나는 승낙하였고, 뜻하지 않게 “교수님”이 되었다. 이제는 백수가 아니라 반백수가 된 것이다. 고작 해봐야 두세 살 많은 학생들에게 교수님이라 불리는 일은 무척이나 어색했다. 심지어 학생 때 같이 반을 듣던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주변 교수님들께서 입을 모아 그럴수록 더 철저하게 위계질서를 지켜야 한다 당부하셨기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교수님”이라는 타이틀을 지켜냈다.


첫 한 달은 솔직히 힘들었다. 급하게 투입되었기에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교육자료 또한 충분히 준비되어있지 않아 내가 직접 공부해 가며 만들어내야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학생들 중 나를 못 미더워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신뢰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초반에는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가르치는 일만으로도 버거워서 파트타임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다른 일은 생각조차 못했다. 설명하고 가르치는 일부터가 나와 크게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고역이었다. 그러나 맡은 일에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더 열심히 준비하고 주어진 일 이상으로 일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고, 두 달, 세 달이 지났다. 포기하고 싶지만 눈 딱 감고 버텨야지,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어느덧 점차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혀가며, 일에 능숙해져 갔다.


학기가 끝나갈 무렵, 다음 학기도 가르치는 일에 대해 제안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거절해야 했지만,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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