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모두 ‘마흔 즈음에’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수다를 떨곤 했다. 인생을 다 산 것 마냥 부르는 노래 가사에 서른은 너무 젊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것인가.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삶의 진실을 서른 즈음에 벌써 깨닫다니 대단한 가수가 아닐 수 없다.
내 나이 서른 즈음에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바빴다. 꽃다운 스물다섯에 결혼하여 다음 해에 첫째를 낳고, 두 해 지나 둘째를 또 낳은 후, 서른이 되면서 막내를 낳았다. 서른 즈음에는 아이 셋을 낳고 몸조리하면서 육아를 하느라 내 정신은 온 데 간 데 없었을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육아를 하는 시절에는 유행가 하나 듣지 않고 오로지 아이들과 생활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딸과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당시의 음악이 나오면 거의 모르는 걸 보면서 ‘아, 그땐 그랬었지.’라며 추억한다.
세상과 단절된 생활이지만 또 다른 통로가 있었다. 아이 셋은 오로지 나만 보고 있었다. 남편은 당시 정말 바빠 육아의 이응조차도 참여하기 힘들었다. 전업주부로서 엄마로서 아이들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하루를 느끼면서 살았다. 당시의 유행가는 몰랐지만 아이들의 커가는 사건 하나하나는 말 그대로 이벤트였다. 뒤집지도 못하던 녀석이 뒤집는가 하면 말 한 단어 하지 못하던 녀석이 엄마, 아빠를 하고, 혼자서 양말을 자기 키만큼 당겨가면서 신고 뿌듯해하는 모습이 한 장면 한 장면 귀한 추억으로 남겨져 있다.
<서른 즈음에> 노래처럼 매일 이별하는 삶은 아니었다. 어찌 생각하면 내 삶이 아니다시피 할 정도로 나와 멀어지는 시기라 느낀다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없어지고 아이의 엄마만 남았으니까. 하지만 그조차도 나의 기술을 장착하는 것이었으리라. 여자들에게는 여러 모드가 있다. 아내 모드, 엄마 모드, 딸 모드. 지금 생각하면 내게 전업주부라는 시간이 없었다면 현재의 나 역시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별을 하면서 다시 새로운 만남을 했고, 아이들 셋과 함께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스물에 하지 못했던 공부를 다시 하면서 글을 쓸 수 있게 된 지금 사십 대가 가장 황금기가 아닐까.
삶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싶다. 공자가 말한 40이라는 의미의 ‘불혹(不惑)’이라는 단어에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처럼 마흔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가장 많은 돈을 벌 시기가 지금이라 그런걸까. 사기 등 큰 사건에도 많이 휘말리곤 하는 게 40대다. 결국 훨씬 더 유혹을 참기 어렵기 때문에 이겨내라는 의미로 공자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 자산을 늘려가면서 자식들을 자립시키고, 평탄한 나이에 접어들면서 부모를 봉양하고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무언가 알 것 같은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녀가 울타리를 벗어나는 건 40대가 되면서 혹은 아이들 자립이 늦어지면 50대가 되면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돈 벌기 어려워지는 요즘 서른이 넘는 자녀들과 함께 사는 가족도 상당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에는 무언가 깊게 생각해야 하는 나이다. 자녀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은 연로해지고 자식들을 필요로 하는 나이가 온다. 병원을 다니며 자식들인 우리들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 홀로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 온전히 지금의 상황과 맞물린다.
황금기지만 힘이 가장 많이 소진될 시기를 우리는 보내고 있다. 홀로 보내는 건 아니다. 주변에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니 이러한 일들도 가능하리라. 함께 있다면 무엇이든 충분히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