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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그리 유경미 Oct 25. 2024

그곳에 내가 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당선작

  빈 테이프에 영상을 새겨 넣는다. 테이프의 한 자리에 내가 있었다.     

  방송제를 보러 간다. 대학을 졸업한 지 20년 만이다. 나와 지금의 신문방송학과 후배들은 안면이 없다. 있다고 한들 내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런 나에게 해마다 방송연구회 후배들은 전화한다.

  “선배님, 방송연구회 후배 ㅇㅇㅇ입니다. 이번에 방송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실 수 있으신지요.”

고맙다. 안면이 없는 선배들을, 거의 오지 않는 선배들을 매년 초대한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안다. 처음 전화는 첫째를 낳았을 때 받았다. 아이 엄마로서 후배들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후배들의 앞날에 더 멋진 선배가 되어 그들 앞에 나타나리라 다짐하며 “아쉽지만, 못 갈 것 같네요.”라며 거절했다. 

  20대의 후배들을 보면 내 아이들 같다. 지금 나의 첫째는 스무 살이다. 나는 대학 동기들 가운데 거의 처음으로 결혼했다. 가족들이 놀란 만큼 대학 동기들도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방송제 초대 문자를 꼬박꼬박 보내 주는 이름 모를 후배들을 보며 기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가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방송제를 하는 즈음에는 늘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남편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한번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운을 띄웠다.

  두 시간을 달리는 동안 흥분됐다. 차 안은 정적이 흘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가서 어떻게 보고 올지만 걱정했다. 나를 데리고 가는 남편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이해하는 남편에게 어떤 감사의 표현을 할까. 방송제를 하는 동안 남편은 친구와 저녁을 먹겠다고 했으니 편히 보고 나중에 만나잔다. 방송제가 열리는 건물 앞에서 나를 내려 주고 남편은 쿨하게 헤어졌다. 건물 안 로비에는 방송제 행사 팸플릿과 포스터가 가득 메우고 있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 무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송제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난다. 방송제를 이끌어 가는 동아리의 이름은 방송연구회다. 학과 소모임별로 연말에 행사를 개최하는데 방송연구회의 가장 큰 행사가 방송제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방송제를 위한 기획을 한다. 방송에는 라디오 구성, 드라마, 광고, 뮤직비디오 등으로 분야를 나누어 팀을 짠다. 장르마다 팀이 정해지면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콘티를 정하고, 촬영 일자를 공유한다. 

  촬영일을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요즘이야 핸드폰으로 찍어도 잘 나오고 디지털화되어 있어 편집도 수월하겠지만 그땐 그렇지 못했다. 영화가 그렇듯 텔레비전 드라마나 광고가 그렇듯 음악이 그렇듯 디지털화되기 전에는 모두 테이프에 저장하여 편집하곤 했다. 비디오의 마지막 세대라고 해야 할까. 학교 기자재는 가격이 비싸 수시로 구매할 수 없었다. 아날로그 비디오카메라는 무겁고 불편했고, 편집을 여러 번 하면 할수록 화질은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최소한의 편집으로 완성된 모습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

  방송제 날짜가 임박할 때 밤새우는 건 기본이었다. 학교 중앙도서관 지하에 우리 실습실이 있을 때였다. 1학년 때였을까. 선배들과 함께 조그만 공간에서 편집을 어떻게 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실제로 방송 장비를 만져 보고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대학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나의 픽이 아닌 성적 따라서 온 학과였지만 그 자체도 내 선택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느 순간에도 나의 경험은 인생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흐르고 있는 순간을 즐겨야 한다. 방송제를 치러 내야 하는 임무가 있었지만, 스무 살의 우리에게는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한 조각 한 조각이 젊음의 조각일 수밖에 없으니 다가오는 방송제 역시도 행복한 하루를 만들어야 했다. 인생에 실패는 없지 않은가. 한 번의 움직임 속에 청춘은 새롭게 태어난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겠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내게 방송제는 현재의 나를 있게 했다.     

  관객석에서 나를 읽는다. 진행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노력이 묻어난다. 어렴풋이 떨려 오는 마이크 울림에도 스며든 설렘이 올라온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가 뒤바뀌는 동안 암흑 속 거친 숨소리들이 젊음을 노래한다. 나도 그랬지, 하며 흐뭇하게 바라보며 암흑을 향해 웃음을 보낸다. 얼마나 떨리고 긴장될지 알고 있기에 더욱 잘 끝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배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아껴서 본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방송제에는 젊음의 시선이 새겨져 있다. 과거의 잔상이 무대 곳곳에 흩어진다. 그곳에 내가 있었음을, 나 역시 방송제의 주연이었음을 기억하려는 듯 하늘거리며 무대를 감싼다.     

  하얀 공간에 검은 글씨를 새겨 넣는다. 작지만 의미 있는 단어들로 엄선해 내 마음을 또박또박 새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아 두었다가, 수필 한 작품으로 남긴다. 별것 없는 내 인생을 작품으로 남겨 둘 수 있는 작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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