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여름의 초록

초록의 신이시여

by 한그리 유경미


언제까지 이렇게 푸르러야 합니까. 내 마음은 아직도 이렇게 깊고 진한 초록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겉은 벌써 낙엽이 지고 꽃이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괴리감이 듭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속을 파고듭니다. 아스팔트가 녹고, 뜨거운 태양을 가리기에 역부족인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기 쉽지 않습니다. 나무의 숨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산에서 쉬는 숨은 도시에서의 턱 막히는 숨보다 살만합니다. 산 아래 공원만 가도 산에 간 느낌으로 쉬었다가 옵니다. 해가 올라오기 전 아침에 일찍 출발해야 합니다. 당신을 마주하기 위해 낙엽을 감추며 며칠을 버팁니다.

여름에는 초록색을 바라보며 더위를 식힙니다. 연둣빛으로 봄을 물들일 때 이렇게 더울 줄 예상했을까요? 적어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특히 올해는 지구촌 곳곳이 역대급으로 더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니까요. 에어컨이 없었던 몇 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더위를 못 참는 사람이 된 건 날씨 탓만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초록은 주변에 있으니 안심합니다.

우리 집 앞에는 건널목 앞 그늘막 파라솔이 초록색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시원해 보여도 막상 가지 못하면 그늘막을 바라봅니다. 길마다 있는 이 아름다운 우산 모양이 얼마나 고마운가요. 밖을 나서기조차 두려운 여름날, 가능하면 나가지 않으려 하지만 그게 뭐 쉬운가요. 일만 마치고 재빠르게 귀가해야지 다짐하다가도 은행 안에 에어컨 바람에 잠시 맘을 녹입니다. 볼일을 마치고 다시 징검다리처럼 초록 파라솔과 파라솔 사이를 건너 집으로 돌아옵니다. 물살을 피해 돌다리를 건너는 아이처럼 햇볕을 피해 파라솔을 건너는 큰아이입니다. 습한 공기에 제법 비라도 한번 쏟아지면 시원해질 것 같은 기대를 하지만, 무심합니다. 초록의 신은 인간의 마음을 알아주기는 하는 걸까요?

더위에 지친 초록에 마음마저 질까 두렵습니다. 낙엽의 마음을 알고 짙은 초록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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