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의 유혹

편견을 넘어서다

by 한그리 유경미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황순원의 대표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의 대사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설을 처음 접할 무렵에는 보라색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일종의 편견이었겠지만, 우울함이나 죽음을 의미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보라색만큼 고운 색도 없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보라색을 멀리했다. 내가 가져서는 안 될 이미지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캔디처럼 슬퍼하거나 우울해하면 안 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삶은 늘 행복해야만 하는 해피엔딩의 나날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채 살았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관심이 많다. 눈치를 본다. 어린 시절부터 남의 입에 오르내릴까 두려워하며 살았다. 어떤 아이가 엉덩이에 힘을 주고 다니는 걸 아이들은 오리 궁둥이라고 놀리는 걸 보았다. 나는 그런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서 허리에 힘을 주지 않고 최대한 나오지 않도록 하며 걸어 다녔다. 똑바로 허리에 힘이 가지 않으니 큰 키가 어정쩡해지고 앞으로 수그리게 되었다. 뒤가 나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면 똑바른 자세가 나에게 도움이 되었을 텐데, 눈치만 보며 살았던 나에게 몸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시선이 가지 않는다. 물론 거슬리기는 한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아무리 노력해서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애를 써도 원하는 곳으로 가지 않은 때가 많다. 운명은 뚜벅뚜벅 앞으로 가고 있으며,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을 어필한다. 그래야 한다. 누가 내 삶을 살아주는 것은 아니기에.

이제는 보라색이 좋다고 의도적으로 말한다. 얼마나 고운가. 빨강과 파랑의 적절한 조화로운 보라색이다. 검은빛이 있어 품위가 있는가 하면 너무 튀지 않아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색이리라. 이제는 눈치 보며 살지 않으련다. 내가 행복하면 되지 않은가.

여름 한 자락, 도라지밭에 서 있다. 꽃잎이 별 모양처럼 입 다물고 있을 때 꾹 눌러 팡 터뜨린다. 별이 폭죽처럼 터져 나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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