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용서한 줄 알았다.
늘 원망하며 아빠가 집에 안 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빠만 안 계시면 엄마와 언니 오빠 우리 세 식구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인에게는 지나친 친절을 베푸셨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신경질적인 히스테리 증세들을 그대로 폭발시켰던 아빠. 용서라는 단어를 아빠에게 적용시켜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결혼 후 부모님과 옆집에 나란히 살게 되면서 아빠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정신적인 강박증에서 비롯된 아빠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손주들에게 베푸는 애정을 보며 내가 받지 못한 애정이 충족되는 것도 같았다. 해가 갈수록 약해져 보이는 아빠의 모습을 볼 때는 그 삶에 대한 연민 또한 느꼈다. 그렇게 아빠를 용서했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글을 쓸 때마다 응어리져 나오는 건 도대체 뭘까. 나는 아빠의 무엇을 용서한 것일까. 용서한 후는 뭐가 달라져야 하는 걸까. 생각해 보니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게 가능한 건지, 혹시 아빠를 미워한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이제는 용서가 무언지조차 모르겠다.
아빠의 임종 직전 마지막 시간, 떠나는 아빠에게 지켜보는 가족들은 모두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얼굴색이 변하고 호흡이 사라지는 아빠를 보면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옆에서 언니가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나도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어 보고 싶었다. 그러면 아빠 마음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이게 마지막 예의가 아닐까. 하지만 내 입은 결코 그 단어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말은 "아빠, 감사합니다."였다. 아빠를 미워했던 감정은 다 사라졌다. 이제는 아빠가 아빠의 자리에 계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따라오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아빠를 용서하지도,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한 채 그저 마음만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