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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바위 Jul 11. 2023

국수가 생각나는 계절

아침에 잠시 반짝한 햇빛을 보고 오늘은 날이 맑으려나 기대한 것이 무색하게 점심즈음부터 비가 억수로 퍼붓기 시작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위에서부터 아래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장대비라는 표현에 걸맞게 굵직하고 거세다. 얼른 창문을 닫고 어두운 하늘을 바라본다. 무거운 물방울들을 참고 견디다 마침내 시원하게 쏟아내었을 하늘. 빗방울들이 쏟아지는 속도가 그동안의 인내를 말하기라도 하는 듯 하늘이 안쓰럽기조차 하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댄다. 창밖과는 다른 실내의 공기. 비 오는 날 실내에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눈을 창밖에 고정시킨 채 이리저리 마음이 흐르는 대로 생각을 움직다.


비, 장마, 7월의 초입, 무더위의 시작, 방학...... 지금의 시간들에 어울리는 단어들을 헤아려본다. 그러다 이내 무언가가 빠져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이즈음에 늘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사라진 무엇.


-그래, 이 계절, 난 국수를 먹었었지.


해마다 더위가 시작될 무렵이면 엄마는 매일같이 국수를 삶으셨다. 점심때가 가까워지면 옆집에 사는 엄마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국수 삶아 놨으니까 어서 먹으러 온나.


엄마의 어서 오라는 전화에도 난 전혀 급하지 않다. 소쿠리에 담겨져 있는 국수면은 언제나 넉넉했으니까. 조금 늑장을 부리다 옆집으로 가면 식탁에 앉아 국수를 드시고 있는 아빠의 등이 보인다. 그럼 난 일부러 느릿느릿 그릇에 국수면을 담고 육수를 붓고, 양념장과 고명을 얻는다. 느릴수록 좋다.  그러다 아빠가 다 드시고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든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빠랑 가까이에 있는 건 불편한 일이었으니까.


엄마의 국수는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국수다. 살짝 후덥지근한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국수. 멸치와 양파를 같이 넣고 끓여 자연 상태로 식힌 육수는 언제나 깊고 시원한 맛을 냈다. 거기에다 늘 한결같은 양념장과 그 위의 정구지(부추) 고명.  양념장이 육수에 퍼지고 소면에 살짝 물들면 정구지를 곁들어 한 젓가락 입에 넣는다. 그러면 익숙한 맛이 입안을 맴돌며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 이 맛이지.


이 계절이 오면 난 몇 년째 먹어보지 못한 그 국수가 생각난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국수를 한 번도 삶지 않으셨다. 국수를 좋아한 건 아빠였지 엄마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국수를 드시는 장면은 내 기억 속에도 없다.


-엄마, 국수 한 번 삶아 먹자.


엄마가 우리 집에 들렀을 때 국수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생각이 없으신가 보다. 국수 한 번 해 먹으려면 손이 많이 가서 귀찮다고 하신다.

그 귀찮은 일을 아빠 때문에 매번 하신 거구나.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국수가 생각난다. 쏟아지는 장대비가 쓸쓸함을 더하는 이 시간, 더 이상 국수를 삶지 않는 엄마를 보며 아빠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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