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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둘이나 있지만, 아직 다섯 살인걸요.

삼 남매 중 첫째의 마음 들여다보기

by 심연

만 두 돌까지는 외동으로 어른들의 사랑 한 몸에 받으며 살았건만, 그 뒤로 동생들이 줄줄이 생길 줄 누가 알았으랴? 5살이 된 우리 집 첫째는 올해로 동생이 둘이나 있는 큰언니가 됐다. 막둥이가 집에 온 날, "아가, 아가"하며 신기해하며 예뻐하는 둘째와 달리, 첫째는 첫날부터 막냇동생에게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둘째와 셋째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나와 남편은 갑자기 생긴 동생으로 둘째가 퇴행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과 달리 도로 아가로 돌아간 이는 바로 첫째였다. 아가처럼 쪽쪽이를 물려고 하고, 두 팔 벌려 둘째의 이름을 부르면 첫째가 먼저 달려와 안겼다.


나도 맏이였기에, 첫째 행동의 이유가 빤히 보였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 상황을 수습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자매의 전쟁 속에서 엄마의 중재는 매번 첫째 아이에게 상처를 줬다.


흐트러진 장난감, 울고 있는 동생, 척하면 척이라고 상황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려졌다. 처음 시비는 분명 동생이 걸었을 거다. 언니의 장난감을 뺏고, 언니는 하지 말라고 소리쳤을 거고, 동생은 지지 않겠다고 대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열받은 언니가 동생을 때렸고 결국 이사달이 난 것이다.


동생을 때린 건 분명 잘 못한 일이지만, 엄마의 눈에는 첫째가 동생을 때릴 수밖에 없던 속사정도 같이 보였다. 이제 19개월 된 고집불통 둘째에게는 말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싫어, 하지 마"라고 백날 말해봤자, 내 목만 아프지 둘째가 그 말을 듣고 멈추지 않을 걸 아니, 첫째는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경위가 이해된다고, "네가 동생을 때릴 수밖에 없던 상황, 엄마도 이해가 가"라고 하며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으니, 엄마의 중재는 늘 엄하고, 뻔하고, 식상해진다. 언니 것을 만진 동생에게는 "언니가 노는 건 만지지 마, 놀고 싶으면 언니한테 빌려주세요 해야지"하며 타일르고, 동생을 때린 첫째에게는 "아무리 화나도, 때리면 안 되는 거야. 그 누구도 때려선 안 돼. 동생한테는 언니 거니깐 가져가지 마라고 말해, 말해도 안 들으면 엄마를 불러" 하며 야단을 친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분명 동생 혼자 울고 있었는데, 끝에는 첫째까지 우는 대환장 파티가 된다. 동생에 대한 미움과 자신에게 화낸 엄마에 대한 서러움이 엉켜, 첫째는 엄마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쿵쿵 거리며 제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방 안에서 화를 쏟아 낸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며 말이다.


동생 싫어, 동생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얼마나 지났을까, 방에서 나온 첫째 손에는 꼬깃꼬깃 접힌 색종이가 들려있었다. 그리곤 조심스레 내게 와서 색종이를 건넸다. "엄마... 미안해...", 이게 뭐냐고 물으니 딸은 '편지'라고 했다. 아직 한글을 쓰지 못하는 딸의 편지에는 알록달록 색연필로 그린 꼬불꼬불한 그림들이 있었다. 읽지는 못해도,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다. 엄마에게 혼났어도, 여전히 엄마에게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첫째의 마음이 보였다.


혼자 다 차지해도 부족한 게 엄마의 품이거늘, 꼭 엄마에게 안겨야만 잠이 드는 셋째 동생과 '안아줘 병'에 걸려 매일 안아달라고 떼쓰는 둘째 동생으로, 첫째가 그 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날은 손에 꼽는다. 그래서인지 품에 동생들을 안고 있어도, 눈길은 늘 애잔하고 짠한 첫째에게 더 가는 것 같다. 첫째는 알까? 엄마의 눈 끝은 항상 네게 닿아있다는 걸 말이다.


누구보다 첫째의 마음을 잘 이해하면서도, 마음처럼 다정한 말이 나가지 않은 날에는 가슴 한편이 아린다. 그런데 그때마다 첫째는 내게 와 먼저 손을 내밀어줬다. '엄마가 혼내도 난 엄마가 좋아'라고 말해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곱고, 귀해서 그날은 동생들 눈을 피해 오랫동안 첫째를 꼭 안아줬다. 어쩌면 엄마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이도 우리 집 맏딸인지 모르겠다.


그날 밤 동생을 재우러 동생 방 침대에 누워있는데, 누군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첫째였다. 딸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엄마, 동생처럼 나도 재워주면 안 돼?"하고 물었다. 매번 씩씩하게 혼자 방에 들어가서 자던 아이라 혼자서 뭐든 잘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날따라 그 아이의 속삭임 유독 크게 들렸다.


동생을 재우고, 첫째 방에 들어갔다. 안 자고 엄마를 기다리며 누워있던 큰 아이, 오랜만에 첫째 옆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며 자장자장 노래를 불러줬다.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기", 자기를 아기라고 불러주니 좋았는지 아이는 꼬물꼬물 아기 흉내를 내며 한참 장난을 치다가 곤히 잠이 들었다. 이제 보니 자는 모습이 아기 때와 똑같았다.


조그만 동생들 사이에서 첫째는 마냥 큰 아이로 보여 종종 잊고 있었나 보다. 첫째도 고작 5살밖에 안 된 아기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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