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용으로 올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네요
20살 초반, 폴더폰에서 LTE폰으로 바꾸면서 처음 카카오톡(이하 '카톡')을 깔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짧으면 하루, 길면 2~3개월의 주기로 프사를 교체했다. 누가 봐도 행복하게 잘 산다는 걸 알 수 있는 그런 사진들 말이다. 그렇게 약 14년 간 카톡 유저로 살다 보니, 300장이 넘는 카톡 프사가 쌓였다. 모아놓고 보니 지난날에 대한 한 편의 포트폴리오 같았다.
내 카톡 프사의 역사는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나눠진다. 아이가 없을 땐 내 얼굴로 도배를 해놨었는데, 아이가 생기니 프사에 내 얼굴은 사라지고, 온통 아이들 얼굴로 가득 채워놨다. 아이가 셋인데, 프사를 올릴 공간은 둘밖에 안 된다는 걸 애석해하면서 말이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는 미성년 보호정책의 일환으로 키즈 계정이 일괄적으로 정지되는 일이 있었다. SNS에 아이들 사진을 올려 불특정 다수와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공유한다는 뜻의 '셰어페어링'이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셰어페어링의 위험성은 나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운영했던 육아 블로그 속 아이들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도 해왔었고, 인스타그램은 시작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카톡 프사에 걸려있는 아이들 사진을 내리긴 쉽지 않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SNS 노출의 위험성은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다 최근 친구로 추가되어있지 않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축하해요'라는 카톡을 받았다. 명확한 목적어도 없는 축하 문자였다. 카톡에 프사도 없어 누군지 유추도 안 됐다. '누구길래, 내게 연락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드니, 불안감을 넘어 오싹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날 이후 카톡 프사에 아이들 얼굴이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프사가 지인들과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는 소통의 도구로서 유용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괜찮은 일이었다. 그저 연락처만 아는, 사무적 관계의 잘 모르는 사이에게까지 내 프라이버시가 노출되는 게 찝찝하고,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카톡에 프사를 내렸다. 카톡 유저로 살아온 이래 처음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 연락처를 저장해도, 카톡에 자동으로 친구로 뜨지 않도록 설정했다.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겐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한 최선이었다. 요즘 세상이 워낙 무서우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진다고 하던데, 예전엔 몰랐던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겁은 '소중한 것을 잃을까 봐 하는 두려움'이었다. 자랑하고 싶은 걸 마음껏 내보일 수 없는 현실이 씁쓸하긴 하지만, 핸드폰 갤러리에 모아놓고 혼자 몰래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혼자 보다가 가끔씩 양가 부모님께 창고 대방출처럼 아이들 사진을 왕창 모아 보내면 받는 피드백도 재밌고 말이다.
프사를 지웠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왜 갑자기 프사를 내렸어?' 하는 연락 한 통도 없었다. 프사를 내리고 알았다. 그동안 아무도 내 프사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그저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그 안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며 살았던 거였다. 그동안 자랑을 목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프사를 올렸던 거였는데, 자랑의 이유가 사라지니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아이들 얼굴을 프사를 걸 이유가 없었다.
프사는 프사일 뿐, 아이들 자랑은 양가 부모님에게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