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하게 들렸던 그의 말이 고맙게 느껴졌다.
저녁 8시, 첫째와 둘째를 간신히 재웠지만, 배앓이로 계속되는 막내의 호출에 지칠 대로 지친 남편이 소파에 기댄 채 "애 키우다가 인생이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한 푸념이었을 뿐인데, 그땐 나도 지쳤던 때라 그의 말 한마디가 예민하게 들렸다. '지금 애 낳은 걸 후회한다는 뜻인가?'라는 생각에, "애들 어리면 다 힘든 거지, 뭐 그리 비관적이야. 다 한 때야, 애들 금방 크잖아"라며 쏘아붙였다.
남편은 애들 다 키우면, 손주도 봐줘야 하지 않냐고 했다. 지금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남편은 황혼육아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됐어~ 아이들도 자기 아이는 자기들이 보라고 해"라고 하자, 남편은 갑자기 내게 노발대발하며 얼굴을 붉혔다. 어떻게 부모가 자식이 힘들다고 하는데 안 도와줄 수 있냐며 말이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그의 훈계를 1절, 2절까지 들었다. "알았어, 자기 말이 맞아,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면 도와줘야지"라는 내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남편은 분노를 가라앉혔다. 이럴 때 보면 육아가 힘들다던 사람이 많나 싶다.
남편은 가끔 홈쇼핑에 여행상품이 나올 때마다 언제쯤이면 저런 데를 가볼 수 있는지 묻는다. 베트남도 가고 싶고, 유럽도 가고 싶고, 자전거로 제주도 투어도 하고 싶은,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남편은 오늘도 삼 남매를 키우느라 집콕 중이다. 품 안에 막내를 안고, 세계테마기행 프로그램을 보며 말이다. 말로는 매번 지겹다, 힘들다 해도 아이들이 필요할 땐 항상 옆에 있어주는 남편을 보니, 이런게 진정한 부성애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니, '애 키우다가 인생 끝나겠다'는 말은 섭섭하게 들을 말이 아니었다. 육아에 참여하지 않아, 아이들이 거저 큰다고 생각하는 아빠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참으로 좋은 아빠이자, 신랑이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좋겠다. 육아 베테랑인 너희 아빠가 이미 너희 자식들 육아까지 도와줄 생각이니 말이야. 그러니 얘들아 아이 낳고 주저앉지 말고, 더 훨훨 날아올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