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는 말을 '행복해'로 바꾸면 생기는 변화
어휴, 힘들어 죽겠다.
세 아이가 너무 예쁘긴 하지만, 예쁜 것과 별개로 미취학 삼 남매를 키우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매일 매 순간 부모로서 시험대에 오르는 느낌이랄까? 밥을 먹이고 잠깐 쉴까 해서 몰래 방에 와 누우면 1분도 안 돼서 "엄마"하고 쫓아오고, 똥 싸서 닦아주려고 하면, 갑자기 탈주해서 엉덩이에 똥 묻은 채로 온 집안을 휘젓고 도망 다닌다.
그뿐이랴 첫째는 자기가 노는 공간을 둘째가 쳐다보기만 해도 저리 가라며 소리소리를 지르고, 막둥이는 주위가 조금만 시끄러워도 우는 목소리로 짜증을 내며 잠에서 깨어난다. 보기만 해도 기가 쭉쭉 빨리는 그런 상황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도 여러 버전으로 직관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숨 쉬듯 자주, 공기반 소리반의 목소리로 말이다.
"거, 힘들다는 말 좀 안 쓰면 안 돼?
방금 셋째 똥기저귀를 갈고, 또 둘째 똥 뒤처리를 하러 들어가는 내게 갑자기 남편이 힘들다는 말을 너무 많이 쓴다며, '힘들다'는 말 사용 자제를 요청했다. 자꾸 옆에서 힘들다고 하니, 본인도 힘이 빠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해는 됐지만, 그 말을 듣자 괜히 썽이 났다.
삼 남매 육아로 기가 쫙쫙 빨려 마른 장작이 된 내게, 불씨가 다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를 던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힘든 사람에게 위로는 못 해줄 망정 힘들다는 말마저 하지 말라고 하니, 속에서 열불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그럼 힘들면 그냥 '힘들구나' 하고 참으라는 거야?"라고 되묻자, 남편은 남편답지 않은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앞으로 힘들다는 말이 나올 것 같으면 '행복해'라는 말로 바꿔서 하자"
뼛속까지 완벽한 T인 사람이, 이토록 감성적인 제안을 해오자, '이 사람이 아직 덜 힘들구나'라는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나름 재미있는 제안 같아 그러자고 받아들였다. 그러고선 우린 힘들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바꿔 말하기 시작했다."힘들.. 행복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장난과 오기 그 사이 어디쯤에서 시작했던 거라, 사실 처음엔 '행복해'도 한두 번만 하고 다시 '힘들다'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린 아직까지 이 룰을 지키고 있다. 장난으로 바꾼 단어 하나가 생각보다 꽤 많은 걸 바꿔놨기 때문이다.
먼저, '행복해'로 바꾸니 나와 남편의 표정이 달라졌다. '힘들다'라고 말할 땐 얼굴에 온갖 인상을 다 쓰고 있었는데, '행복해'로 바꾸자 우린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진다'는 말이 이 상황에서도 유효했다. 떡진 머리에 기름진 얼굴, 퀭한 눈과 늘어난 옷을 입고 있지만, 웃으며 '행복해'를 외치는 우리는 진짜 전보단 행복해 보였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좋아했다. 힘들다고 말할 땐, 내 마음만 커 보이고, 주변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힘들다라며 한숨을 푹푹 쉴 때, 우리 아이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그때의 아이들 표정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집을 정리하면서 장난식으로 "행~복~~ 해~~~"하며 성악하듯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첫째와 둘째가 키득거리며 재밌어했다.
아이들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행복해~~"하며 까르르거리고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 그게 그 뜻이 아닌데'하며 뜨끔하긴 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얼굴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진정한 행복감이 차올랐다. '행복해'가 자신의 진짜 뜻을 찾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끊임없는 육아와 살림 굴레에 한숨이 나올 때마다 '행복해'를 말하며 일상의 쉼표를 찍는다. "하... 너무 행복해서 눈물 난다 눈물 나"라고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그 말이 재밌어서 날 보며 웃고 있는 가족들이 보인다.
'힘들다'라고 생각했을 땐 이 모든 과정을 나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저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난 단 한순간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 옆에는 아이들을 같이 키우겠다고 육아휴직까지 쓰며 애쓰고 있는 남편이 있었고, 눈앞에는 애교를 떨며 엄마 아빠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들이 셋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복닥복닥 세 아이를 키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구는 손이 많이 가서 힘들겠다고 하지만, 난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지금을 행운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말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힘들다는 의미로 시작한 '행복해'가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으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난 주말 점심, 아이 셋이 같이 낮잠을 자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우리도 신나서 이제 쉬어볼까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셋째가 깨어났다. '역시, 셋이 같이 잠드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에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뭉그적뭉그적 침대에서 일어나 막둥이에게 갔다. 그렇게 10초 만에 다시 육아가 시작된 것이다.
아이가 셋이라 너무 행복하다~~ 행복해~~
틀린 말은 아닌데... 그때 남편의 모습을 보니 혹시 너무 행복해서 실성한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