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프면,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10월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마치고, 11, 12월 두 달간은 한 해를 정리하며, 푹 쉴 생각이었다. 그림 공모전 준비하랴, 브런치북 완성하랴, 이번 10월은 올 한 해를 통틀어 가장 바쁜 달이었기 때문이다.
"여보, 나 이번엔 진짜 쉴 거야"하고 남편에게 나의 휴식 계획을 밝혔다. 남편은 매일 밤마다 자지 않고 글을 쓰는 나를 못마땅했기에, 내가 쉬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며 반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내 계획을 듣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 넌 분명 몸이 근질근질해서 또 일을 벌일 거야"
남편의 말 때문이었을까? 나의 휴식 계획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돼버렸다. 아, 일을 벌인 건 아니고,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폐렴이네요, 지금 당장 입원해야겠어요.
약을 먹은 지 일주일이나 됐는데도, 막내의 감기는 좀처럼 낫질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심해졌다. 그래서 조금 더 큰 병원으로 왔다. 약을 바꾸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병원을 바꾸니 병명이 달라져있었다.
'폐렴이라니', 이 작은 게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처음부터 큰 병원으로 왔어야 했는데, 괜히 동네 소아과에 가 병을 키운 것 같아' 후회도 되고, 폐렴을 눈치채지 못 한 의사 선생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막내의 입원으로 우리 집은 '비상체제모드'로 전환됐다. 이번 주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나는 병원으로,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 각자 아이들을 챙겼다. 어느 쪽도 쉬운 건 없었다. 창문도 없는 병실에 갇혀 4박 5일간 아이를 간호하는 건 그거대로 힘들었고, 아빠 혼자서 딸 둘을 아침마다 등원시키고, 하원해서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건 그거대로 힘들었다.
그런데 비상체제모드는 비단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니었다. 소아병동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부모들이 우리와 처지가 비슷해 보였다. 입원한 아이는 같은데, 그 곁을 지키는 어른은 매일 밤낮으로 달라져있었다. 옆방에 지내던 7살 아이는 엄마, 아빠가 둘 다 일하고 있어, 오전에는 할머니랑 이모가 번갈아 왔고, 오후엔 엄마, 밤엔 아빠가 왔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우린 부부가 둘 다 휴직 중이라, 아이가 입원을 해도 집이 어찌어찌 굴러가니 말이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복직했으면 어쩔뻔했어..." 우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어린 자녀가 셋이면 부모가 둘 다 같이 집에 있어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입원 생활은 갑갑했지만, 아이의 몸상태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그리고 병원에서 네 밤을 자고 일어난 아침, 간호사 선생님이 방에 들어오셔서 종이 한 장을 주고 가셨다. 마지막으로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원장님 진료를 받으면 퇴원이라고 했다. 종이에 적힌 '퇴원예정'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퇴원을 하고 밖을 나오니 날은 전보다 더 쌀쌀해졌고, 달력은 그새 11월로 넘어가있었다. 정말인지 월말까지 빼곡히 바쁜 10월이었다. 몸은 천근만근 했지만, 오랜만에 집에 갈 생각에 신이 났다. 첫째, 둘째도 너무 보고 싶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전엔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던 쿰쿰한 냄새가 났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태가 난다더니, 집안 곳곳엔 엄마가 4일간 부재했던 태가 났다. 11, 12월에는 좀 여유 있게 지내려 했는데...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