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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초 Jul 29. 2023

# 빚 권하는 사회

주택담보대출 조기 상환 스토리

국가 채무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뉴스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국가 채무를 인구수로 나누면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빚이 나오는데, 그 금액이 2022년 기준으로 1인당 2천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가계대출도 마찬가지다. 은행권의 가계 대출 잔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는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식상할 정도다. 내가 갚아야 할 빚은 아니지만, 도대체 누가 저렇게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지 솔직히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살면서 대출을 받은 적이 한 번 있다. 결혼할 때 9천만 원짜리 신혼집을 마련한다고 5천만 원을 은행에서 장기모기지로 대출했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때라 아무것도 모른 채 부동산을 통해 모든 일을 진행했다. 장기모기지 20년, 대출금리 5.75%에, 1년간은 이자만, 2년 차부터는 원금과 이자를 함께 상환하는 조건의 대출이었다.   


대출을 받은 저녁, 아내와 나는 20년간 우리가 내야 할 이자를 계산해 보았다. 빌린 원금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이자로 줘야 한다는 사실에 우린 깜짝 놀랐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빌리긴 했지만, 그때 처음 은행이 도둑 같단 생각을 했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순 없었다. 20년짜리 모기지 대출을 했지만, 그 돈을 20년에 걸쳐 상환할 생각은 1도 없었다. 아내와 나는 바로 대출 조기 상환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갓 공무원에 임용된 나도, 타 지역으로 와 새로 일을 시작한 아내도 급여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많지 않은 급여의 지출을 줄여 그만큼 더 저축하기로 했다. 당장 급여를 올려 받는 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출을 줄이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빚 상환이 늦어질수록 은행의 배만 불려준다는 걸 알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대출을 갚고 싶단 마음뿐이었다.


우선 둘의 수입을 하나의 통장으로 모았다. 새어 나가는 돈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수입으로 들어오는 돈에서 매월 200만 원씩 일단 저축부터 했다. 참고로 200만 원은 우리 수입의 50%가 넘는 돈이었고,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고정비를 비롯한 생활비를 썼다. 생활비의 모든 항목을 봉투에 기록하고, 그 항목별 봉투에 미리 정해둔 예산을 넣어 두었다. 그리고 그 예산 내에서만 지출했다. 물론 부족하다고 느낀 달도 있었다. 하지만 대출 상환이 늦어질수록 우리가 갚아야 할 돈이 더 늘어난다는 걸 알기에 결코 멈추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견뎌내야 할 시기였다.

참고로 그때 이후로 직장을 다니는 동안 저축이 급여의 50% 이하로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소득이 늘었을 때도 지출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저축을 더 늘려 수입의 80% 정도까지 모으기도 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소비 습관과 저축이 지금의 경제적 자유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저축은 집 근처 저축은행을 이용했다. 시중은행과 비교해 금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이 제2금융권이라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예금자보호 한도 안이라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6% 금리의 적금 상품에 가입했는데, (그땐 순진하게 정말 은행이 6%를 준다고 믿었다. 이전 글: 당연한 것에 대한 삐뚠 생각 (2) 은행은 고객을 위해 존재할까?) 원금만 해도 1년이면 2천4백만 원, 2년이면 4천8백만 원이니, 2년 후에는 원금과 이자에 약간의 돈만 보태면 대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계획한 대로 돈을 모았고, 2년 만에 은행을 찾아가 대출을 갚으려 했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일이 하나 생겼다. 대출 원금과 이자만 갚으면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은행은 20년에 걸쳐 상환할 돈을 조기에 갚는 것이 자신들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며, 수수료를 물게 했다. 바로 중도상환 수수료였다. 세상물정 모르는 나는 어이가 없었다. 빌린 돈을 빨리 갚아주면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빨리 갚는다고 수수료를 물릴 줄은 미처 몰랐다. 그때 확실히 알았다. 은행은 고객을 생각하는 집단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이 글의 독자도 기억하고 있으면 좋겠다. 우리의 예금도, 대출도, 은행에서 판매하는 모든 금융 상품도 결국은 은행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그때 이후로 은행이든 어디든 대출할 일은 만들지 않는다. 큰 평수의 아파트로 옮긴 적이 있지만, 대출을 하지는 않았다. 도시 외곽의 조금 오래된 아파트를 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외곽의 집이라 집값 상승기에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애초부터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실거주가 목적인 집이라 사는 동안 조용하고 편안했다. 오히려 대출이 없었기에 그 집에 사는 동안 대출 상환의 부담 없이 버는 족족 다 저축할 수 있었다.   






주위에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학자금 대출부터 전세대출 또는 주택담보대출, 그리고 카드론까지. 우리는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빚에 대한 생각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빚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여전히 확고하다. 그 어떤 빚도 착한 빚은 없다. 빚을 져야 할 일은 가능한 만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빚을 져야 한다면 빨리 상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제껏 돈이 필요하다고 카드론을 쓴 적이 없다. 카드값 결제도 분할 납부하지 않는다. 무조건 일시불로 납부한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딜러는 캐피털을 끼면 더 많은 금액을 할인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안다. 다른 옵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굳이 그걸 권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당연히 우린 오직 우리가 가진 현금으로 차를 구입했다.


이런 우리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이해한다. 주택담보대출 하지 않고 아파트를 구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캐피털을 끼지 않고 차를 구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아내와 나는 다만 대출이 싫고 두려울 뿐이다.


우리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 우리에게로 향하지 않고, 남의 배만 불려주는 상황이 싫을 뿐이다. 대출의 금액이 커 상환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 아니다. 20년간 매달 돌아오는 이자와 원금 상환에 우리의 일상과 관계가 훼손될까 두렵다. 매 순간 어깨를 짓누르는 빚에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상황이 두렵다. 나이 50이 넘어서야 겨우 주택담보대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두렵다. 값아야 할 빚 때문에 원치도 않는 직장에서 버티기만 해야 하는 삶이 두렵다. 그리고 빚지는 것을 겁내지 않고, 어느 정도의 빚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생각, 그런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두렵다.






-p.s-

요즘은 검색 사이트에서 이자 계산기를 찾아 몇 가지 값만 넣으면, 쉽게 내가 값아야 할 이자의 총액을 알 수 있으니 꼭 확인해보자. 내가 집을 구할 때와 비교해 주택 가격이 많이 올라 나도 궁금했다. 주택 가격이 오른 만큼 대출 금액도 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 삼아 대출 금액을 3억 원으로, 대출기한은 똑같이 20년, 연 이자율 5%, 상환방법은 원리금 균등으로 값을 넣어 봤는데,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내가 은행에 빌린 돈은 3억 원인데, 20년간 내가 갚아야 할 이자만 무려 1억 7천5백만 원이 조금 넘게 나왔다. 20년간 내가 피땀 흘려 번 돈 1억 7천5백만 원이 나와 내 가족이 아닌, 은행의 배를 채우는, 고정적인 수입원이 되는 셈이다.

주택담보대출 상환기한을 더 길게 하면 더 놀라운 금액이 나온다. 다른 조건은 모두 동일하게 하되, 대출 기한을 30년으로 변경하면 내가 값아야 할 이자만 무려 2억 8천만 원 정도가 된다. 거의 원금과 맞먹는 돈이다. 어처구니 없는 건 작년부터 은행들이 주담대 40년짜리를, 일부 은행은 올해부터 50년짜리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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