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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초 Jul 01. 2023

# 책은 사서 봐야 할까?

도서 구입에 대한, 다른 생각

알고 지내는 지인이 있다. 사회생활 처음 시작할 때 만난 분인데, 내게 경제관념을 심어준 멘토이기도 하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책이 없었다. 평소 책 읽기를 즐겨하고, 늘 무엇인가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지인이기에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었다. 그랬더니 지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정기적으로 책을 보기 위해 서점에 가고, 거기서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책의 목차와 함께 내용을 한 번 대충 훑어본다. 그렇게 보다가 그 책이 제대로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되면 집 근처 도서관에서 대출을 하거나, 도서관에 없으면 구입희망도서로 신청해 다시 읽는다. 그렇게 두 번을 읽고 나서도 그 책이 집에 두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면 그때 책을 구입한다.   

 


처음에는 참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다른 데 돈을 아끼더라도 책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게 당시 내 생각이었다. 지인의 집을 다녀온 후, 우리 집 거실 한 벽을 차지하는 책장과 그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볼 때마다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책 읽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책을 많이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헌책방을 다니며 태백산맥, 혼불, 아리랑 등 소설 전집을 저렴하게 구입해 보란 듯 책장에 꽂아두었다. 읽은 책도 많지만, 읽지 못한 채 꽂혀있기만 한 책도 적지 않았다. 내 손이 닿기만을 기다리는 책, 분명 읽은 책인데 무슨 내용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 책,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책들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내 마음을 울리고, 내 삶에 작은 변화라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구입한 것이었는데, 빼곡한 책과 진열된 책장이 혹시 내 관심사나 지적 수준을 드러내기 위한 허영은 아니었는지 자꾸 되묻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정리하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허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든 건 결심이나 결단이 아니라 의외의 사건이었다. 바로 이사였다. 전세로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다 보니 많은 책장과 책장 가득한 책들은 어느새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어 있었다.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리고 아내가 미니멀한 삶에 관심을 가지면서 마침내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을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책이라는 자원을 공유하거나 순환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의 본진인 책장부터 정리했다. 거실 한 벽을 가득 채웠던 책장이지만, 이제는 하나만 남았다. 본진을 잃은 책들은 갈 곳을 잃었다. 읽지 않은 책은 중고서점에 되팔고, 일부는 지역 도서관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필요로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가까이 두고서 생각날 때마다 다시 읽고 싶은 책만 추리고 추려 오십여 권 정도 남겼다. 많은 책을 정리하고 나니 생각지 못했던 일도 일어났다. 소수의 책에 이전에 없던 애착이 생겼다. 남겨진 책에 더 자주 눈길을 주게 되었고, 그 반복된 눈길은 이전과는 다른 깊이의 이해를 만들었다.  




지금은 2주에 한 번, 정기적으로 지역의 도서관을 방문한다. 2주의 대출 기한에 1인당 10권씩 대출할 수 있다. 신간 도서도 구입 희망 신청을 하면 구입 즉시 먼저 대출할 수 있게 연락을 준다. 도서관에 없는 책은 지역의 다른 도서관에서 대차신청해 읽을 수 있다. 우리 집 거실의 책장은 사라졌지만, 도서관에 더 큰 책장이 생겼다. 내가 모두 다 소유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파이어 #FIRE #경제적자유 #조기은퇴 #소유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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