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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초 Aug 23. 2023

# 일에 대한 생각

feat. SayNo & Mentor

내가 가진 일에 대한 생각에 영감을 주고, 오늘의 나로 이끌어 준 멘토와 인쇄물(?)이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경제에 대한 개념이 없던 내게 경제관념을 갖게 한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나의 멘토(이전 글 : # 책은 사서 봐야 할까?그에게 )이다. 같은 직장의 동료이기도 한 그가, 직장에서 보여준 말과 행동은 확실히 남들과 달랐다. 한 해가 시작되기 전, 원하는 보직을 작성해 제출하는데, 대부분이 쉬운 업무를 선호했다. 이왕이면 쉽고 편한 일을 맡고 싶은 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직장이 자신에게 맡기고 싶은 일을 달라며, 보직란을 비운 채 제출했다. 어차피 원하는 보직을 써내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속마음을 알 순 없지만, 그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나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내가 그때의 일을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무원의 일이란 것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사기업에 비하면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하기 싫은 마음만 아니라면 자신뿐만 아니라 누구든 주어진 일을 다 해 낼 수 있는 거라고. 실제로 그 해에 직장 상사는 모두가 회피하는 보직을 그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일을 맡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 내가 본 그는 어떤 일이 주어지든 불평이 없으며, 일처리 하나만큼은 분명하고, 빠르며, 정확한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공무원은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벌써 집을 향해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퇴근하고 없는 직장의 한 공간에서, 경제(경매 및 공매) 관련 스터디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공무원 임용을 준비하는 대학 후배들을 위해 강의를 하기도 했다. 모든 조명이 꺼진 건물에 오직 그가 있는 공간만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는 멈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또는 타인을 위해 촛불을 들고 어둠을 밝히려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공무원이 되기만 하면 끝이라 여기며, 삶의 변화를 위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주위에선 그런 그를 특이하고 별난 사람 취급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가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과 같았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그런 생각과 모습을 본받고 싶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한 권의 책을 보여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책이 아니라, 제본된 인쇄물이었다. 하얀 표지 위에 'SayNo(세이노)의 가르침'이란 제목이 크고 단호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2023년 3월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내가 그 인쇄물을 처음 접한 것은 17년 전인, 2006년 즈음이다. 그가 알려준 온라인 카페에서 세이노란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세이노가 말하는 내용을 읽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그래서 나 역시 모든 자료를 출력하고 제본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으나, 책 표지에는 아무런 제목도 달지 않았다. 오직 나만 알고,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인쇄물을 읽고 또 읽으며, 세이노가 말하는 방식대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여러 분야에서 보고 배울 점이 많지만, 그중 특히 내 마음을 움직인 건, 일을 하는 방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마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에 더 와닿았을 것이다. 당시 내게 일은 회피의 대상이었다. 피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면 가능한 적게 해야 하는 것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이노에게 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른 차원(another level)의 사람이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며, 그런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보고 배우라 했다.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복사를 하는 허드레 일부터 제대로 하고, 어떤 일이든 재미있게 하라고 했다. 업무와 관련된 지식은 스펀지처럼 흡수해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그 분야의 귀신이 돼라 했다. 끊임없이 일의 효율을 높일 방법을 고민하고, 그 일을 해 본 경험자의 의견도 반드시 들어보라 했다. 나아가 내가 없어도 업무가 돌아갈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업무와 관련된 통계나 데이터도 작성해 두라 했다. 오직 일의 질적인 결과에만 관심을 두며, 받는 돈만큼 일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급여 이상으로 일하라 했다.


처음 글을 읽을 땐 그의 말이 황당하게 느껴졌다. 분명 하나하나 맞는 말이긴 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뜬구름 같았다. 하지만 내용을 읽을수록 그의 말이 뜬구름이 아니라, 깊은 고민과 치열한 생존경쟁의 토대 위에 놓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을 노동을 착취하려는 고용주의 뻔한 수작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알려주는, 일하는 방식의 전제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처럼 살겠다면 세이노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다. 이제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적당히 일하고, 받는 만큼 일하겠다는 생각(종업원의 마인드)으로 살면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런 생각은 회사를 경영하거나, 자신의 사업으로 부자가 되겠다는 사람의 마인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항상 소수이고, 그들이 부자인 것은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세이노가 말한 일하는 방식을 공무원 조직에 적용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업무 능력을 키우는 일이야 혼자의 노력으로 가능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았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일의 효율을 높여 보려 했지만, 조직은 이제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일하기를 요구했다. 상명하달식의 의사결정에 익숙한 조직문화는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익숙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자꾸 모난 돌이 되곤 했다. 당연히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그럴 때마다 주변 동료와 상사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니 효율을 높이기 위한 시도 자체를 스스로 포기하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과 마찰이 일어날 만한 일은 아예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처신하게 되었다.


성과에 대한 보상도 문제였다. 기피 보직을 맡아 1년간 고생해도 성과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고, 다음 해 보직에는 반영조차 되지 않았다. 성과급은 이미 연공서열에 따라 결과가 나오도록 점수표가 짜여져 있었다.(지금은 좀 달라졌을까?) 더 실망스러운 건 다시 보직을 결정할 때였다. 일 잘하는 사람은 그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같은 일을 주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맡겨졌다. 반대로 일을 하기 싫어하고, 상사가 다루기 불편한 사람은 오히려 쉬운 보직을 가져가고, 일도 적게 했다. 이제까지 다 그렇게 해 왔다는 말을 핑계로, 성과의 결과가 공평하지 않은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다. 20퍼센트의 사람이 80퍼센트의 일을 하고, 80퍼센트의 사람이 20퍼센트의 일을 하는 곳이 바로 내가 속한 조직이었다.


그때부터 누구보다 일찍 은퇴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공무원이란 직업은 오래 하면 할수록 위험한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오던 방식만을 고집하는 관행에 물들어, 새로운 시도는 일절 하지 않게 될까 두려웠다. 노후에 받게 될 연금만을 바라보며, 현재의 상황을 무사안일의 태도로 초지일관할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과 행동으로 정년까지 30년을 살게 된다면, 말 그대로 고집불통 철밥통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끼니때마다 넣어주는 모이에 만족하는, 새장 속 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 서른까지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 목표였으나, 공무원이 되고 난 이후에는 누구보다 먼저 은퇴하는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불만이 있긴 했지만, 은퇴하기 전까지는 공무원으로 일을 해야 했다. 하는 일만큼의 적정 임금(임금 인상률도 마찬가지)도, 일의 성과에 비례하는 성과급도, 고생한 결과에 따른 보직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장일을 아무렇게나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주의 마인드를 가진 채 살고 싶지 않았고, 혹시나 그런 생각과 행동이 나도 모르게 내 것으로 체득될까 두려웠다. 남들이 기피하는 보직을 맡은 적도 많았다. 업무량이 많아 힘들고, 자주 퇴근이 늦어졌지만, 맡게 된 후에는 내 일이라 생각하고 불평하지 않았다. 내가 맡은 일이 내 생각과 내 삶을 부정적으로 이끌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끌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의외의 장점이 있기도 했다. 힘든 보직인 만큼 권한이 주어져 재량껏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에 대한 생각이 같은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내 보직과 관련 없는 일을 하기도 했다. 굳이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 일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없는 일도 만들어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남다르게 생각하고, 남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를 통해 한 권의 인쇄물을 소개받았기에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운이 삶을 바꿔놓는 계기가 될 순 있지만, 바라는 인생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지금의 내 삶이 과거에 내가 가진 생각과 행동의 결과물인 것처럼, 먼 미래의 나를 빚어내는 것도 결국은 지금 내가 가진 생각과 행동이다. 그래서 남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며, 일도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시간적 경제적 자유인이 되어 예전만큼 일을 하진 않지만, 일에 대한 생각만큼은 여전하다. 알바를 하고 있지만, 내 일이란 생각으로 하고 있다. 매번 어떻게 하면 시간을 줄이고 동선을 줄일까 고민한다. 집안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직장일처럼 일의 댓가로 급여가 지급되진 않지만, 돈으로 책정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것이 집안일이다. 그런 집안일 역시 내 일이란 생각으로, 주도성을 가지고 임한다. 아내의 눈치나 잔소리 때문에 마지 못해 하는 것이 아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환경에서 지내며,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기에 기꺼이 하는 것이다. 여자라서 집안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설거지를 할 수 있다.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나 청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도 내게 주어진 일에 나의 열정을 담는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삶의 모습만을 떠올리며 나의 길을 걸어간다.






- P.S -

'세이노의 가르침'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꼭 한 번, 아니 여러 번 반복해서 읽기를 권한다. 특히 사회 초년생에게 더 강조해서 권하고 싶다. 삼백 쪽이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정가 7,2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가격이 싸다고 책의 가치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다. 작가가 출판사와 그 가격에 판매하기로 계약을 맺었기에 가능한 일이며, 작가는 별도의 인세조차 받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구매할 경우 10% 할인을 받을 수 있고, 심지어 전자책의 경우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나 역시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하여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다시 읽고 있다. 이미 56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어 버렸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정말 맛있는 맛집이나 멋진 숙소를 발견했을 때, 남몰래 나만 알고 싶은 그 마음을.




#FIRE #파이어 #경제적 자유 # 조기은퇴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멘토 #men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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