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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사초 Aug 09. 2023

# 은퇴하면 1억으로 몇 년을 살 수 있을까?

시간적 경제적 자유인의 자기 실험

절약과 저축, 그리고 투자라는 재료가 15년의 숙성 시간과 만나 경제적 자유라는 결과를 맺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인생의 종착지가 아니라 정거장이다. 수능을 마친 고3에게 취업이란 새 과제가 주어지듯, 경제적 자유인에게도 삶은 이어지고,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다. 다만 직업처럼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목매지 않을 뿐이다. 이제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할 수 있다.

하지만 돈 문제는 경제 여건에 따라 언제든 갑작스럽게 변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서 은퇴한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 않을 정도라 판단해 은퇴한 것이기에 자산의 변동에 늘 관심을 갖는다. 지금처럼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월급 없이, 가진 돈의 범위 안에서 쓰기만 해야 할 때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특히 계획에 없는 지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평소 가계부를 기록하며 수입과 지출을 확인하고, 중간중간 우리의 자산에 어떤 변동이 일어났는지 수시로 점검한다. 때론 재정적으로 계획한 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해 보기도 하는데, '1억으로 몇 년을 살(버틸) 수 있을까'. 아내와 내가 작년부터 하고 있는 자기 실험이다.






파라오가 꿈을 꾸었다. 흉하고 야윈 암소 일곱 마리가 잘생기고 살진 암소 일곱 마리를 먹는 꿈, 그리고 깡마르고 동풍에 시든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리는 꿈이었다. 파라오가 요셉을 불러 그 꿈을 해석하라 했다. 요셉은 이집트 땅에 7년의 큰 풍년이 올 것이고, 뒤이어 7년의 심한 흉년이 와 이 땅을 소멸시킬 것이라 해석했다. 그리고 파라오에게 7년 간의 풍년 동안 식량을 잘 간직해 7년의 흉년을 대비하라 조언했다. 이에 파라오는 요셉에게 이집트의 온 땅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직책을 맡겨 7년의 풍년 동안 7년의 흉년을 대비케 하였다.  



우선 1억이란 금액은 부동산이나 주식 등이 아닌 오직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돈이다. 현금을 이렇게나 많이 보유한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고, 어리석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금 보유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미국이 달러를 무한정 찍어 헬리콥터로 뿌려대던 시절, 많은 현금 보유는 그 자체로 바보라 비난받았다. 하지만 최근 경제 상황이 달라져 부동산과 주식 시장이 침체하고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현금 보유에 대한 말들이 달라졌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유사시를 대비해 일정 규모의 현금을 곳간에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머니 트레이너라 불리는 보도섀퍼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용도의 돈을 '경제적 에어백'이라 표현했다. 보도섀퍼는 실직이나 질병의 위기 상황을 대비해 반드시 지출해야 할 최소비용의 6개월에서 1년 치를 마련해 두어야 불안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내 질병과 사고를 대비해 나 스스로 따로 돈을 모아 왔기에 그 정도 비용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이십 대에 어머니께서 나 몰래 가입한 보험이 있긴 하다. 보험에 대해서는 이전 글; #당연한 것에 대한 삐뚠 생각 - 보험 하나 정도는 가입해야지) 그래서 7년의 대흉년과 같은 상황을 대비해 보험금 용도로 쓸 수 있는 돈과 자산을 현금화하지 않고도 현재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생활비 2년 치를 마련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금액이 바로 1억이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비상시를 대비해야 할 돈이기에 별도의 통장에 보유할 뿐, 일절 손대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에서 보유한 돈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상황이 되니 '경제적 에어백'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1억이란 돈으로 이런 실험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가계부 관련 글(이전글; #가계부, 써야 할까요?)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15년 넘게 가계부를 쓰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가계의 소득과 지출에 관한 월간, 연간 내역을 거의 꿰뚫고 있다. 아내와 나는 지난 2년간 월평균 220만 원 정도를 지출했다.(세금까지 모두 포함한 금액임) 원래 계획된 1년 예산은 월 200만 원, 1년에 1,2회 해외여행 경비 500만 원, 예비비 100만 원을 더해 총 3천만 원이다. 코로나 이후 해외로 나가지 못해 여행경비는 쓰지 못하고, 생활비가 조금 늘었다. 월 220만 원을 지출한다면 연 2천6백4십만 원이니, 1억을 가지고 있다면 4년을 채 쓰지 못한다. 만약 40년 정도를 더 산다고 가정하면, 노후대비를 위해 무려 10억 이상의 돈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1년을 살아보니 이론의 계산과 현실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존재했다. 작년에 아내와 나는 직업이라 할 만한 본업이 없었다. 당연히 그로 인한 소득도 없다. 하지만 아내는 주 3시간 일하는 알바를 작년에 이어 지금까지 하고 있다. 나는 작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4월부터 주 10시간 정도의 알바를 하고 있다. 참고로 아내와 나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기에, 추가적으로 일을 더 하거나 하루 8시간씩 일하는 직업을 가질 생각이 없다.  

작년 한 해에만 아내의 알바와 배당 수입, 이자 수입 그리고 기타 이런저런 부가적인 수입을 합쳐보니 1천1백만 원 정도다. 1억을 가지고 아무런 소득 없이 지출만 하며 1년을 살았다면 7천3백만 원 정도가 남아야 하지만, 이런저런 소득이 발생하니 8천4백6십만 원 정도가 남았다. 새로 시작한 내 알바의 수입까지 더해지면 올해는 작년보다 더 적게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만 된다면 1억은 우리에게 4년이 아니라 6~7년 정도를 생활할 수 있는 돈이 된다. 그 말은 40년을 더 산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노후자금이 10억이 아니라, 그 절반 정도인 5~6억 정도로 확 줄어든다는 의미다.






재정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실험이지만, 이런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이 있다.


첫째, 누가 어떤 기준에서 정한 금액인지 알 수 없지만,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최소 10억, 또는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그대로 믿을 필요가 없다. 솔직히 나의 노동으로 1억을 모으기도 쉽지 않은데, 10억이란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럽다. 그리고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노후자금이 정말 10억이나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목표 금액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 인생의 한정된 시간과 노동을 회사나 다른 누군가에게 바쳐야 한다는 의미이다.

밥그릇은 작은 게 채우기 쉽다. 내 작은 밥그릇에는 내게 필요한 만큼의 밥만 채우면 된다. 남의 큰 밥그릇을 부러워하거나, 내 밥그릇의 크기를 다른 사람의 밥그릇과 비교하지 않으면 된다.


둘째, 경제적 자유나 노후대비는 소득이 많은 사람보다 지출이 적은 사람이 유리하다. 소득이 얼마인가와 상관없이 지출이 많으면 노후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 반대로 지출이 적다면 노후대비는 한결 쉬워진다. 다만 소득이 늘어날 때 지출이 함께 늘어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가급적 젊은 시절부터 아끼고 절약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처럼 사회 초년생일 때 또는 신혼 초기 때의 소비 습관이 경제적 자유나 노후대비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전 글 : #빚 권하는 사회) 지금 적게 소비하고 많이 모으는 것이 당장은 힘들게 하겠지만, 앞으로의 인생에 더 많은 자기 시간과 삶의 주도권을 갖게 할 것이다.


셋째, 노후 대비에 필요한 돈을 특정 금액으로 책정한다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아내와 내가 하는 소소한 알바처럼 작은 벌이만 있어도 노후 대비에 필요한 금액은 현저히 달라진다. 10억이란 돈이 없다고 막연히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용돈 정도의 금액에 불과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이란 사회적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요즘은 주민센터에서 실시하는 공공근로도 많고, 알바앱을 통해 알바 구하기도 어렵지 않다. 본업과 관련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적은 시간 소소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일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고, 여전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노후 대비의 부담 또한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넷째, 돈이 잘 벌리면 늘 그럴 것 같지만, 경기는 순환한다. 7년의 풍년 뒤에 7년의 흉년이 이어지는 것처럼. 그래서 7년의 풍년 동안 7년의 흉년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수입이 줄거나, 노동을 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그때를 대비해 많이 모으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내가 일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현금이 창출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곶감을 마련해 두었더라도 빼먹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동이 난다. 워런버핏 역시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한다'라며 돈이 들어오는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파이어 #FIRE #경제적자유 #조기은퇴 #노후대비 #가계부 #경제적에어백 #보도셰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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