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올챙이가 자라 개구리가 되듯, 아이는 자라 성인이 됩니다. 노란 민들레 꽃이 하얗게 씨를 만들 때에도, 발생학적으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성체가 되는 것.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기억은 추억이 되기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잊기도 합니다.
그런 기억들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들은 추억으로 변하고,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들 조차 추억으로 변합니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죠.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순간도 그 상황을 벗어나면 추억으로 미화되죠. 그 추억은 저는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추억들을 행복한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고 우리는 모두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가치라는 정의가 값어치가 아닙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고, 가치가 있기에 우리는 우리 각자의 존재로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한 인간의 평생 동안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부모에게, 서로 다른 가정환경과 사회적 환경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따라서 인간관계의 갈등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스스로도 내적 갈등이 매일같이 발생하는데, 타인과의 관계가 좋을 리가 있나요. 하지만 그 모든 순간 우리는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말을 할까 말까, 이걸 먹을까 말까, 지금 비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지.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존재를 부정당하면 화가 납니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겠지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은, 어쩌면 내가 여태 삶을 살았던,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내 자신의 내밀한 속을 뒤집어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는 사고의 틀을 깨야 하는 일 일지도 모릅니다.
새가 알 속에서 다 자라 알을 깨고 나오듯이, 알을 깨야 우리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새는, 알 속에 갇혀 살다가 끝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삶을 마무리하기보단,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며 하늘과 가까워지는 삶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난 살아 있구나. 살아 있기에 가치가 있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행복하구나. 이 모든 것을 느낍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구나, 나는 어떨 때 화가 나는구나. 우리는 내면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알아가기도 하지만 세상의 경험을 통해 알아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알아낸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엄청난 성장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스스로를 자주 인정하려 하는 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갑지’, ‘아 그래?’라는 말을 달고 살아갑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그 상황에 대한 방관이 될 수 있는 말이지만, 어떻게 본다면 상대를 인정하는 말입니다.
언쟁을 회피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큰 피해가 없다면 그런갑다~하고 인정해 버리는 것이 속 편할 것 같습니다. 쟤는 왜 저럴까 생각하기 전에, 쟤는 원래 그런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나의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데도 효율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다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30대든, 60대든 말입니다. 우리는 신체적 성장은 비록 멈추고 퇴화될지라도 정신적으로는 얼마든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각자의 존재와 그를 넘어 세계를 인정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더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