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 소망
바람이 불면 씨앗이 훨훨 날려간다. 나에게도 그럴 기회가 있을까 고민하지만, 하물며 작은 씨앗에게도 어미를 벗어날 기회가 있는데, 나에게도 있겠지. 그 작은 씨앗은 점점 자라 어른이 되어가겠지.
몸집은 이제 다 커진 것 같다. 조금만 더 성장하면, 조금만 더 성숙해질 수 있다면, 나만의 꽃을 피울 수 있을 텐데. 꽃이 피는 데도 시간이 걸리겠지. 나도 나의 꿈을 피워내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엇을 보고 자란 건지 욕심은 이미 그득하여 꽃대는 주야장천 올려뒀는데 꽃을 피울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들은 가득한데, 해야 할 것들도 많은데 기숙사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침에 나가기 전 정돈해 둔 이불부터 보여서 그 안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버리기 일쑤다.
낮잠을 잤으니 밤에는 조금 생기가 돈다. 이제야 글을 쓰고, 정신을 창려 내일까지인 과제를 하나 둘 생각해 낸다. 쪽지시험도 있던 것 같은데. 젠장. 그래도 해낸다. 나는 눈이 온다고 잠시 기다리는 민들레가 아니라, 해야 하면 해내는 인간이니까. 하기 싫어 미루고 미루다 가도, 결국 시간 안에 해내는 사람이니까.
머리를 비우기 위해, 우선 졸려 보이는 눈을 크게 뜨기 위해 따뜻한 물로 온몸을 적신 후 안경을 쓴다. 본업 시작이다. 조만간 또 일이 있긴 하지만, 왠지 해가 다 저문 지금은 아니, 달이 어여쁘게 떠 있는 지금은 내가 힘차게 성장할 때인 것 같다.
또다시 식욕이 돌지 않는다. 밥은 아까 먹을 만큼 먹었지만, 입이 심심해도 무언갈 먹고 싶지 않다. 왜지. 아까 거울은 보지도 않았는데. 학교 오기 전 내 몸무게는 그대로였는데. 저번처럼 또 이상증세가 나타나지 않았길 바라며, 오늘 밥을 한 끼라고 먹었음에 감사해 본다.
어제오늘 참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외롭진 않다. 우울하지도 않다. 약간의 무력감이 있을 뿐이다. 이게 다 호르몬의 농간에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일까 싶기도 하며, 이제 슬 나의 성장을 준비해 본다. 이제 겨울은 시작되었지만 나의 겨울은 이제 끝이 나 가매, 싹을 틔울 준비를 해야겠지.
책상 위에 방치된 컵도 설거지를 해야 하고, 다음 주에 내가 없이 방을 뺄 룸메를 위해 청소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귀찮지만, 나는 또 살아가야 하기에, 귀찮음과 게으름을 이겨 내보기로 한다.
민들레는 참 부럽다.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아도, 그저 살아만 가도 될 테니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정말 민들레처럼 여기저기 흔한 들꽃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무섭다.
이제껏 민들레와 인간을 닮았다 하다 이제 와서 상황을 바꾸는 것을 보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 몇 주가 지났다고 나의 생각이 변화하는 중일까. 민들레지만 나는 특별한 꽃이 되고 싶다. 꽃집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싶기도 하고, 귀족 같은 집 정원에서 정원사의 손길을 받으며 어여쁘게 나의 향을 뽐내고 싶다.
수수하게 살고 있지만, 화려하게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욕망이다. 욕망이라는 게 참 더럽다.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부정하게 하지 않는가. 스스로의 존재는 인정하고 싶지만, 욕망이 너무 그득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욕망을 실현하여 현실화하면 된다. 현실화를 ‘시키는’것이 아니라, ‘하는’것이다. 현실을 자각하고도 나의 그릇된 욕망을 나의 그릇으로 받아들이려니 무기력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내 그릇만큼만, 그것보다 약간 차고 넘치게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의 미덕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