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는 가족의 생일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특별한 아침이 시작되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 부엌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엄마의 손끝에서 하나둘 반찬들이 완성되어 갔다. 꿈결에 잠긴 채로도 그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프라이팬 위에서 생선이 지글거리는 소리, 냄비 속에서 미역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엄마가 나물을 손질하며 내는 조용한 소리까지.
생일 아침,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건 언제나 엄마가 준비한 고봉밥과 푸짐한 반찬들이었다. 생선구이, 잡채, 나물, 그리고 따뜻한 미역국. 엄마는 늘 정성스럽게 생일상을 차리고, 그 상을 잠시 안방 창가에 두었다. 그곳은 우리 집에서 햇살이 가장 잘 들어오는 곳, 엄마가 '좋은 자리'라 부르는 곳이었다. 그 자리에 놓인 생일상 앞에서 엄마는 언제나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왜 밥상을 저기다 둬?”
초등학생 시절,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셨다.
“우리 가족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라고 빌어주는 거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엄마의 미소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저 생일이면 미역국을 먹으며 엄마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 내겐 전부였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에 진학하며 집을 떠났다. 자취를 하며 맞이한 생일날, 왠지 모를 허전함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쓸쓸히 아침을 맞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엄마의 생일상이 그리웠다. 그 고소한 냄새, 따뜻한 밥 한 그릇, 그리고 엄마의 손길이 고스란히 담긴 반찬들. 그리움이 사무쳐올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생일 축하해, 우리 딸. 오늘도 엄마가 미역국 끓였어. 너는 잘 먹고 있지?”
엄마의 목소리에는 언제나처럼 따스함이 묻어 있었다. 비록 나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엄마는 나를 위해 생일상을 차리고 계셨다. 내가 없는 빈자리에서도 그 상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서 나를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하셨으리라. 내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는 내 가정을 꾸렸다. 나름대로 성인이 되었다고 자부했지만, 엄마의 생일상만큼은 여전히 변함없이 내 곁에 있었다. 생일 아침이면 엄마는 여전히 그 밥상을 준비하고, 그것을 안방 창가에 올려두셨다. 엄마는 나를 위해 손수 끓인 미역국을 먹으며 나를 떠올리셨을 것이다. '우리 딸이 어디서든 잘 지내고 있을 거야.' 엄마의 마음속에는 늘 나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엄마의 생일상은 그저 밥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빼곡히 담긴 작은 제단이었다. 우리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안전을 기원하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오늘도 엄마는 생일이 다가오면 분주히 생일상을 준비하신다. 엄마가 생일상을 차리며 우리를 위해 빌었던 그 모든 소망들이, 엄마의 손 끝에 담긴 애틋한 마음이, 그리고 우리가 느꼈던 그 평온한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이제는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엄마의 생일상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그것은 단순한 밥상이 아니라, 엄마가 우리를 위해 매일매일 쌓아오신 사랑의 기억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그 생일상을 떠올리며, 엄마가 내게 주신 그 마음을, 나의 가족에게 전하고 싶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엄마는 안방 창가 앞에서 조용히 손을 모으고 계실 것이다.
엄마, 고마워요.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늘 그 자리에 있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