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가족은 단출했지만, 언제나 따뜻했고 부족함이 없었다. 아빠는 공무원으로 집안을 책임졌고, 외벌이 생활이었음에도 우리는 평온하게 살아갔다. 이는 아빠의 고정된 수입 외에도, 엄마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세심한 손길 덕분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자, 실질적인 엔진이었다. 더 넉넉한 살림을 위해 엄마는 이웃집 아이들을 돌보았고, 때로는 보습학원의 통학 차량을 운전했으며, 때로는 반찬가게에서 자신의 손맛을 더했다. 동네 문구점에서도 꽤 오래 일을 하셨는데, 이 덕분에 나와 동생은 필요한 학용품을 언제나 부족함 없이 가질 수 있었다. 엄마의 땀방울로 모아진 그 수입은 아빠의 월급과 더불어 우리 가정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덕분에 우리 가족은 흔들리지 않는 작은 배처럼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할 수 있었다.
아빠는 성실했고, 엄마는 강인했다. 부모님은 그들의 젊음과 시간을 우리 가정을 위해 쏟아부었고,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은 평온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는 성인이 되었고, 동생도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제야 엄마는 30여 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오롯한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가슴속에 간직만 했었던 열정의 씨앗들이 하나둘씩 싹을 틔우기라도 하듯, 엄마는 다양한 자격증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 첫걸음은 바리스타였다. 엄마는 커피 한 잔에 세월의 향기와 함께 자신의 꿈을 피워냈다
"엄마, 커피도 잘 안 마시면서 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했어?"
나는 조금 의아해 물었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커피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는 게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냥 커피를 만들어보고 싶었어. 라테 아트를 해보니까 재미있더라.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참 좋더라고."
엄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풍성한 라테 거품 위에 살포시 놓인 작은 나뭇잎을 처음 보았을 때, 그건 그 어떤 고급 카페에서의 한 잔 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엉성하지만 정성을 담아 그려내었을 그 작은 예술작품은 마치 엄마가 30년 동안 마음속 깊이 간직하던 열정을 작은 잔 속에 담아낸 듯했다. 엄마는 그 한 잔의 커피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듯했다.
엄마의 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뒤, 엄마는 곧바로 조주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하셨다. 평소 술을 마시지도 않던 엄마가 이번에는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칵테일은 또 왜 배우는 거야?"
나는 또다시 궁금했다.
"색깔도 예쁘고, 만드는 과정이 참 재밌더라. 무언가를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면 뭔가가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아서 신비롭고 즐거워."
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걱정하던 조주기능사 시험에 합격하고 난 뒤에도 엄마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최근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셨는데, 평생 남을 돌보는 일에 익숙하셨던 엄마에게 이 길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챙기며 보람을 얻던 엄마는 이제 타인의 삶에도 손길을 뻗어 따뜻한 도움을 줄 준비를 마치셨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내 마음은 매번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나 역시 어릴 적엔 꿈이 많았지만, 어른이 되면서 꿈들이 하나둘씩 흐릿해졌다. 갖가지 이유를 만들고 핑곗거리를 찾으면서 내 안에 솟구치던 열정을 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일깨웠다. ‘아직 늦지 않았어. 뭐든 하고 싶은 것은 해봐야 되는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한 엄마의 모습이 마음 깊숙이 울렸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고, 삶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엄마는 몸소 보여주셨다.
나는 이제 엄마를 ‘꿈돌이’라고 부르고 싶다. 엄마는 언제나 새로운 꿈을 꾸며,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 매번 기쁨과 깨달음을 발견한다. 그 여정에서 얻은 작은 기쁨들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는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도 다시금 나의 꿈을 돌아보게 하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엄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꿈을 꾸고, 도전할 것이다. 그 여정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며, 나는 그 길을 걸어가는 엄마를 지켜보며 언제나 응원할 것이다.
우리 엄마, 꿈돌이. 그 열정과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