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던 무렵,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더 전만 해도 과외의 문턱은 지금보다 낮았다. 대학 입학을 앞둔 수험생이나 대학생들에게 과외는 꽤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입원이었고, 소위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소문이 나기만 하면 여러 경로를 통해 과외 제안이 들어오곤 했다. 당시에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과외가 흔했고, 학원보다 개인 교습이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과외의 세계는 일종의 인맥과 신뢰로 얽혀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절이었다.
나도 그랬다. 수능을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대학 시절 내내, 방학이 되면 항상 일정한 수입원이 있었다. 나는 공부를 꽤 잘했었고, 가르치는 것도 자신이 있었다. 과외는 몸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었고, 시간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학생이 문제를 푸는 동안 잠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내게는 꽤 좋은 보너스처럼 느껴졌다.
방학마다 집에 내려오면 과외 제안이 끊이지 않았다. 스케줄을 짜며 바쁘게 움직일 때마다 ‘내가 인기가 꽤 있나 보네.’라고 속으로 뿌듯해하곤 했다. 과외는 항상 엄마의 지인을 통해 시작되었고, 때로는 지인의 지인에게까지 그 범위가 넓어졌다. 엄마는 집 안에서 전화기를 들고 지인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곤 하셨다. 어쩌다 내가 지나가면서 듣게 되는 대화 속에는 언제나 ‘우리 딸’이 중심에 있었다.
"00이 이모가 과외 좀 해달래. 시간 되지?"
“옆집 이모가 딸 영어 좀 가르쳐 달라고 하시는데, 해줄 거지?”
“엄마 지인이 너 생각나서 연락하셨더라. 이번 방학에도 과외할 생각 있지?”
그 시절에는 아무런 의심도, 별 생각도 없었다. 나는 단지 내가 잘해서 입소문이 난 거라 여겼다. ‘이 참에 더 많이 벌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한 주에 두세 번,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됐고, 그조차도 내가 설명만 잘해주면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내 능력으로 모든 걸 이뤘다고 여겼다. 과외에서 성취감을 느낄 때마다 나는 더 자주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내가 스스로 용돈을 벌어가며 자립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고, 그런 내 모습이 스스로도 대견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날 대신하여 몇 년간 이 부탁을 해오신 거잖아?’
엄마는 원래 자존심이 강하고, 부탁을 잘 하지 않는 성격이다. 옳다고 믿는 일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당당한 분이셨지만, 정작 누군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런 엄마가 나를 위해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혹여 거절이라도 당하면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는 아마 여러 번 거절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고개를 조아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잘해서 과외가 이어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쌓아온 관계와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었으리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는 나를 위해, 나의 작은 성공을 위해 묵묵히 과외 중개사가 되어주셨다. 그 역할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을 감내하셨다.
그런 엄마의 노고를 생각하자 고마움과 민망함이 교차했다. 내가 과외를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오랜 시간 쌓아온 인간관계 덕분이었다. 엄마의 진솔함과 올곧은 성품 덕분에 주변 지인들이 나를 믿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수고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원래는 내가 감당했어야 할 일들을 덜어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엄마, 나 과외 시켜주려고 많이 노력하셨겠네.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나 봐.”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당연히 네가 잘해서 그런 거지, 내가 뭐 했다고. 그냥 엄마 마음이지.”
엄마는 언제나 그랬다. 내가 잘 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그러나 이제는 안다. 엄마가 내 곁에서 묵묵히 지원해준 덕분에, 내가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엄마는 나의 작은 성공을 위해 묵묵히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셨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말이다.
이제야 엄마의 그 수고와 배려가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느낀다. 엄마의 강인함과 따뜻함이 겹쳐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그 모습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한다. 내게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배려와 사랑 덕분이라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 바로 엄마에게 더 많이 고마워하고 엄마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