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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 Sep 04. 2024

엄마는 놔뚜라족


“놔뚜라~!!!!”

“놔뚜라놔뚜라! 나뚜라 놔 뚜라!”


엄마가 또 저러신다. 내가 밥상을 치우려 하면, 마치 밥상이 닳아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리신다.


'놔뚜라(냅둬라>놔둬라+경상도식 억양>놔뚜라)'

몇 번이고 반복된 그 말이 어느새 하나의 음정이 된다. 그 음정이 꼭 우리 전통 타령 같기도 하고, 마치 원시 부족의 말 같은 느낌도 든다. 어이없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손을 멈추고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누가 보면 놔뚜라 부족이라도 있는 줄 알겠네. 알겠다, 알겠어. 참나.”






어릴 적 나는 호기심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요리도 그랬고, 설거지도 그랬다. 엄마처럼 행동하면서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엄마의 일이라고 여겼던 일들을 도우면 엄마는 말씀하셨다.


“나중에 시집가서 많이 할 텐데, 냅둬라. 엄마가 할게.”


시집가서 하게 될 테니 지금은 하지 말라는 그 말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시집가서 안 할 건데!’라는 반발심도 생기고, ‘그럼 엄마는 언제 쉬어?’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결국 집안일을 귀찮아하는 마음에 엄마의 놔뚜라 타령을 핑계로 삼았다. 마음 한편이 불편했지만, 편한 길을 택하기로 했다. 마음이 불편한 날이면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들렸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 물이 튀는 소리, 음식물 통을 비우는 소리까지,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텔레비전에만 집중했다.






남편과 함께 친정을 방문하기 몇 주 전부터 엄마는 ‘먹고 싶은 요리 리스트’를 물어보신다. 번거로우실까 봐 말을 아끼면, 엄마는 또 그걸 섭섭해하신다. 그래서 이제는 쉬운 엄마표 요리 몇 가지를 알려드린다. 우리가 도착한 날, 엄마의 거한 ‘정식 특선’ 한 상이 당당하게 우리 앞에 차려진다. 이걸 준비하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기본 반찬 한두 가지에 한 끼 밥상을 차리는 데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상을 차리는 데 반나절은 걸렸을 게 분명하다. 그 밥상 앞에서 엄마는 의기양양해진다.


맛있다고 연발하며 엄마의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운다. 이때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효도다. 남편은 대식가를 자처하고, 나도 ‘없어서 못 먹은 사람’처럼 한 입 가득 엄마 음식을 채운다. 그리고 결전의 순간이 온다. 식사를 마치고 빈 그릇과 밥상을 정리하려고 하면, 또 등장하신다. 우리 ‘놔뚜라족’ 사모님.


“놔뚜라 놔뚜라~~ 엄마가 할게, 놔뚜라~~~!” 


“엄마, 진짜 놔뚜라 부족이라도 되는 거야?” 

엄마를 놀리면서도, 그 유쾌한 타령을 들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옛날에는 시집가서 하라더니, 이제 내가 할게.”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엄마를 밀어내면 엄마는 그 새 또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 오신다. 기름기가 많아서 안 된다, 엄마 살림은 엄마가 알아서 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것도 안 먹힌다 싶으면 그냥 가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커피나 타라는 엄마의 꿀호령이 떨어진다.


'그래. 엄마는 그냥 딸 시키기 싫은 거구나.'


 사실 알고 있었지만, 여전한 그 마음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엄마의 놔뚜라에는 깊은 사랑과 희생, 그리고 배려가 담겨 있다. 어릴 때는 잔소리 같았고, 가끔은 나를 방해하는 것 같던 그 한마디가, 엄마만의 방식으로 나를 보호하려는 사랑이었다는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엄마가 놔뚜라족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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