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나의 임신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당연하게도, 본인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굳이 문장으로 적어보는 이유는, 그 ‘당연함’이 막상 내 일이 되었을 때는 전혀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 6년 차였다. 그렇지만 ‘2세 계획’이라는 말은 나에게 거의 금기어에 가까웠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도 있었고,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무엇보다 지금의 삶이 크게 부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임신과 육아를 이 삶에 끼워 넣는 일이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나의 리듬을 깨뜨릴 것 같아 두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없었다. '부모'라는 것은, 자기 삶에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 또한 자녀계획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우리 둘만의 생활은 오래 이어졌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도 손주 이야기를 꺼내며 부담을 주는 분들은 아니셨다. ‘너희 둘이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라며, 우리 부부의 선택을 지지해 주신 덕분에 우리는 꽤 오랫동안 아무 압박 없이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공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의학적으로 '노산'의 경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인 것일까. 누군가는 임신을 준비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시험관을 시작했다고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이미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꽤 자주 들려왔다. 그 이야기들은 꽤나 단단했던 나를 직접적으로 흔들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씩 마음 한 구석에 조용히 쌓이는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만의 삶'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한 시점이. 예전에는 금요일 밤이면 당연하다는 듯 술자리가 있었고, 회사가 일찍 끝나는 날에는 지인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그게 즐거움의 전부인 것처럼 살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밤 열한 시만 되어도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그런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더 이상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저녁에는 거실에 TV를 켜둔 채, 남편과 나란히 앉아 각자의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TV화면 속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넌지시 거실 전체를 감싸고 있었고, 내 오른손 안의 작은 영상들은 끊임없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은 채, 내일이면 기억도 나지 않을 영상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그 질문 끝에서, 아이가 있는 삶이 떠올랐다. 그리고 의외로 그 장면이 생각보다는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2세 계획을 시작했다. 2025년, 벚꽃이 피던 시기였다.
2025년 8월 말이었다.
매주 일요일마다 나가던 강의를 한 주 쉬게 되었고, 그 덕분에 오랜만에 온전한 주말이 생겼다. 일요일에 일을 하다 보니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조차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 들곤 했기에, 그 한 번의 휴강이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냥 보내기에는 아까운 기회였다. 남편은 군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때 나는 금주 중이었다. 계획임신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달 결과’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술을 자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여행까지 가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건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었다. 군산에 가면 공설시장에서 매운 잡채를 먹으며 맥주를 한 잔 마셔야 했고, 바다 근처에 가면 광어회를 시켜 소주 한 잔쯤은 마셔 줘야 했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행 전날 아침,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기로 했다. 아침 첫 소변이 좋다고 해서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고, 결국 5분도 채 되지 않아 성급하게 확인해 버렸다.
한 줄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묘한 안도감도 있었다. 이제 마음 편하게 여행을 즐기면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군산에서 마실 시원한 소맥 한 잔을 생각하니 임테기의 결과가 약간은 괜찮아졌다.
출근 중이던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결과가 나왔냐고 묻는 말이었다. 이상하게도 ‘한 줄이야’라는 답장을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별것 아닌 문장인데도 맘이 쓰였고 손이 멈췄다. 나는 메시지를 '안읽씹' 상태로 둔 채, 여행 코스나 검색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내다가, 마시던 커피가 다 떨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기 위해 화장실 앞을 지나는데, 버려야 할 테스트기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봤다. 분명히 한 줄이었던 옆 자리에, 아주 희미하게 선 하나가 더 생겨 있었다. 선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빛에 비춰야 겨우 보이는 정도의 흐릿한 붉은 자국이었다. 음성일 때는 그렇게 단호하게 한 줄만 남던 테스트기였는데, 그 단호한 붉은 라인 옆에 애매하게 남아 있는 또 다른 선이 낯설었다.
나는 그 막대기를 들고 집 안을 몇 번이고 돌아다녔다. 형광등 아래에서도 보고, 창가로 가서 자연광에서도 보고, 각도를 바꿔가며 몇 번이고 확인했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
'설마... 성공한 건가?'
기쁨이 먼저 올라올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오히려 조용히 가라앉았다.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처럼, 감정이 차분해졌다.
임신이 맞는 것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배 위에 가만히 손을 얹어 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배 안에 또 다른 생명체의 씨앗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진짜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보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데, 나는 ‘아, 됐나 보다’ 하는 담담한 마음이 가장 크게 들었다. 나는 분명 MBTI로 보면 파워 F이자 파워 N인 사람인데, 어째서 내 인생에서 가장 감격스러울 수도 있는 이 순간에 이렇게까지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은 걸까. 믿기지 않아서였을까.
그날 아침 나는,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작은 흰 막대기를 들고, 남편에게 어떻게 말을 전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가만히 서서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