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하기 전에는 태동이라는 것이 아주 막연했다. 또, 당연한 말이지만, 내 몸 안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고, 그 작은 생명체의 움직임을 본체인 내가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신비롭다기보다는 오히려 잘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짱이(태명)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17주 정도였을까. 가만히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뱃속 어딘가에서 작은 물방울이 뽀로록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깊숙한 곳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뱃가죽 가까운 어딘가에서, 아주 작고 가볍게 '툭' 하고 닿는 느낌. 귀엽다고 표현해도 될 만큼 미세한 그 신호가, 지금 생각해 보면 짱이가 처음으로 보내온 인사였다.
그때는 그것이 태동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내 몸 안의 장기들이 만들어낸 어떤 반응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이후로도 며칠 동안 비슷한 느낌이 반복되면서 비로소 ‘아, 이게 태동이구나’ 하고 알게 됐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개념이, 아주 작고 구체적인 감각으로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마다 태동을 느끼는 시기는 제각각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20주가 넘어서, 또 누군가는 그보다 더 늦게 느끼기도 한다고. 나는 비교적 빨리 느낀 편이었는데, 그 이유가 내 성격이 조금 예민한 탓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같은 ‘태동’이라는 경험도 이렇게 다르게 시작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방울이 터지는 것 같던 느낌이,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처럼 바뀌었다. 가만히 누워 배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날에는 금붕어 한 마리가 조용히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제법 힘이 붙은 장어 한 마리가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보다 훨씬 분명하고, 또 생각보다 훨씬 활발한 움직임이었다.
한 번은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한참 동안이나 뱃속을 돌아다니는 짱이 덕분에 쉽게 잠들지 못한 적도 있다. 넓지도 않을 그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싶다가도,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부분을 손으로 가만히 짚어보면 ‘아, 지금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하루에 두세 번 정도는 딸꾹질도 한다. 배 안에서 규칙적으로 톡, 톡 울리는 그 느낌은 마치 내 배 전체가 작은 동굴이 된 것처럼 퍼져 나간다. 배 위에 손을 가만히 올려두고 그 리듬을 느끼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 작은 존재도 지금 꽤 당황하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괜히 움직임이 덜한 것 같은 어느 날에는 배를 가만히 두드려 보게 된다. 잘 있는지, 오늘은 조금 조용한 건 아닌지, 쓸데없이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러면 꼭 대답이라도 하듯, 짱이는 조금 늦게라도 한 번씩 움직여 준다. 그 작은 반응 하나에 마음이 놓이고, 괜히 안심이 되는 걸 보면, 우리는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참 신비로운 경험이다. 이제 겨우 2kg 남짓한 작은 생명이 이렇게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 움직임을 느끼고 있자면, 내가 이제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서서히 실감 나면서 은근한 부담감이 스며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시작될, 경험해 보지도 못한 새로운 시간들이 조금은 기대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