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1

by 가온


주변에서 누군가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축하하는 마음에 이어 늘 하나의 생각이 따라왔다.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부끄럽고, 어이없는 질문.


‘그럼 1년 동안 술을 못 마시는 거야…?’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것 또한 좋아하는 나는 술을 꽤 즐기는 편이었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을 은근히 믿었고, 술이라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조금 더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매개라고 생각해 왔다. 모임 장소에 술이 빠지면 어딘가 허전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는 스무 살 이후로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사회 초년생 시절, 소주 한 병도 채 안 되던 나의 주량은 어느 순간 “여자 치고는 센 편이죠”라는 말을 슬쩍 꺼낼 수 있을 정도로까지 늘어나 있었다. 친구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도, 소주를 어느 정도는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나름의 강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게 되면, 술을 마실 수 없다.


최소 9개월에서 1년 가까이나. 임신 준비 기간이 길어지거나 모유 수유까지 이어진다면, 그 기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이것 역시 내가 임신을 ‘다음에, 다음에’로 미뤄왔던 수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겠다. 일주일을 열심히 버티고 나서, 금요일 밤 남편과 마주 앉아 기울이던 소주 한 잔. 그 시간이 나에게는 꽤 큰 위로이자 낙이었다. 그래서 ‘금주’라는 말은, 조금 과장하자면 호환마마처럼 막연히 두려운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간만에 떠난 남편과의 여행에서조차 술을 입에 댈 수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뱃속에는 아주 작은 생명의 씨앗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나의 사소한 즐거움을 위해 그 존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는 행동은 절대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 아래를 걸으며 땀에 절어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들어와 시원하게 샤워를 마친 다음, 냉장고 속 캔맥주를 따서 서로 ‘짠’ 하고 부딪히는 그 순간, 그 기분만큼은 어떻게든 흉내 내고 싶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0.00짜리 맥주를 샀다. 예전에 감기 걸렸을 때 한 번 마셔봤던, 알코올도 없고, 당도 없고, 칼로리도 없는, 맥주의 탈을 쓴 탄산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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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맥주에 비해 맛이 밍밍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 맛이 꽤 괜찮게 느껴졌다. 어쩌면 '맥주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입 맛에 맞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의 금주 생활이 예상외로 담담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맥주도, 소주도, 와인도, 막걸리도, 하이볼조차. 내가 좋아하던 모든 술이, 전혀 당기지 않았다.


소주 특유의 알코올 향만 떠올려도 속이 울렁거렸고, 초록색 병을 보는 것조차 괜히 불편했다. 예전에는 달콤하다고 잘 마셨던 와인이나 막걸리도 마찬가지였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틀어두고 남편과 한 잔씩 타서 홀짝거리던 하이볼도 그 특유의 알코올 향을 생각하자 속이 거북했다.


어차피 마실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싶었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참는 것과는 달랐다. 정말로,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빔밥을 먹을 때 일부러 손을 삐끗한 척하며 듬뿍 넣던 참기름도 그 고소한 향이 어느 순간부터는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하루에 한 잔은 꼭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조차 그 특유의 향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가장 낯설었던 건, 삼겹살이었다.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와, 그 옆에 놓인 소주잔. 그 조합은 오랫동안 나에게 거의 완벽한 장면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그 기름이 튀는 소리와 냄새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슥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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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매일 전화를 걸어 내 몸 상태를 여쭤보셨고, 나는 대답했다.


“몸은 딱히 이상 없는데, 이상하게 향이 강하고 느끼한 게 싫어.”

엄마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그런 게 입덧이야.”

“응? 나는 구역질을 하거나 토하지 않는데?”

“어떤 음식이 먹기 싫은 것도 입덧이야. 엄마도 입덧이 심한 편은 아니었는데, 너 엄마 닮았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입덧이라는 것이 꼭 구역질이나 구토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이건, 내 몸이 스스로 무언가를 걸러내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닿고 나니, 앞으로 이어질 몇 달의 시간이 조금은 길고, 또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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