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되었든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향이 강한 그 어떤 음식도 당기지 않았다. 그 범주에는 다행히 알코올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불금 없이 앞으로 10달을 어떻게 버티지’ 하던 걱정에서는 한 발짝 물러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의외로 나를 안심시켰던 것이 있었다. 하루에 한두 잔은 꼭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조차 전혀 당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출근 후, 나의 하루를 열어주던 거의 의식 같은 습관.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스타벅스 앞을 지나며 은근하게 퍼지는 커피 향을 맡는 것을 좋아했고, 탕비실에서 진하게 내려지는 커피 냄새를 가만히 음미하는 시간 역시 나에게는 작지만 확실한 루틴이었다. 그래서 임신을 하면 커피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부분이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임신 중에도 하루 200mg 이하의 카페인 섭취는 태아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며, 스타벅스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한 잔에는 약 150mg 정도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임신을 하고 보니,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일부러 참는 것이 아니었다. 커피를 추출할 때 올라오는 고소한 원두 향을 맡는 것이 힘겨웠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진한 커피를 농축해 놓은 것을 코앞에 들이민 것처럼, 향이 지나치게 강하게 느껴졌다. 숨을 들이쉬는 순간 진한 커피 향이 코 안 어딘가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라,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커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참기름, 들기름, 참깨 드레싱처럼 ‘고소함’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이 하나같이 버겁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고소하다고 느꼈던 향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과하게 부풀려진 것처럼 코를 찔렀다. 마치 내 코 안의 감각이 과장되어, 작은 향도 전부 증폭해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한식과 멀어졌다.
그다음은 기름이었다. 삼겹살, 소갈비, 곱창, 치킨, 기름이 지글지글 올라와야 완성되는 음식들. 그동안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을 이제는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보글거리는 기름이 위장을 그대로 덮어버리는 것 같은 상상까지 더해지니, 입에 가져간다는 건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여기에 더해, 임신 초기라 회 같은 날것 음식도 피해야 했다.
알코올은 당연히 제외.
기름진 음식도 제외.
커피도 제외.
익숙했던 한식도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뭘 먹고 싶은 걸까?'
임신을 하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긴다고 믿었다. 밤중에 잠든 남편을 깨워 “딸기가 먹고 싶어”, “갑자기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 같은 말을 하게 될 줄 알았다. 남편은 헐레벌떡 옷을 챙겨 입고 음식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나는 그런 남편을 기다리며 또 다른 먹고 싶은 것을 떠올리고, 그렇게 그가 사 온 음식을 먹으며 괜히 웃게 되는 장면들을 상상하곤 했다. 막연하지만, 분명 남편을 행복한 괴로움에 빠지게 만드는 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먹고 싶은 건 없고, 먹기 싫은 것만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뭔가 억울했고, 좋은 찬스를 놓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렇게 되자 무언가를 먹는 시간조차 편하지 않았다. 한 끼를 겨우 넘기고 나면, 곧바로 다음 식사가 걱정되었다.
‘다음 끼니때는 뭘 먹어야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자 하루 종일 '먹기 싫은 것을 피하기 위해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생각해 내야 하는' 굴레에 빠지게 되었다. 은근한 스트레스였다.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유독 생마늘이 당겼다고 하셨다. 속이 계속 울렁거려서, 알싸하고 매운 마늘을 그렇게 찾게 되더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역시 딸은 엄마를 닮나’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임신·육아 커뮤니티를 보면 입덧은 늘 빠지지 않는 주제였다. 누군가는 먹기만 하면 토하는 ‘토덧’을 겪고 있었고,
누군가는 먹지 않으면 더 힘든 ‘먹덧’을 겪고 있었으며, 양치만 해도 힘들다는 '양치덧'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있었고, 조금만 먹어도 체해버린다는 '체덧' 증상도 있었다. 그 다양한 이야기들 사이에서 보면, 나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 것의 즐거움이 상실되어 하루의 작은 낙이었던 시간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은 생각보다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분명 원했고, 계획했던 임신이었다. 그래서 기쁜 마음이 기본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조금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뭘 먹고 싶은지 도대체 모르겠는 마음과 싸운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인가, 며칠째 비슷한 음식만 겨우 입에 넣고 버티던 중에 이상하게도 아주 완벽할 것 같은 음식이 떠올랐다.
얼큰해서 느끼할 리가 없고, 고소한 향과도 거리가 먼 것.
각종 토핑이 들어가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건 빼고, 원하는 것만 담을 수 있는 것.
마라탕.
향이 강한 음식이지만, 그 알싸한 향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이상하게도 꽉 막혀 있던 입맛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간만에 느끼는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감각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그때는 알아채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