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유행의 후발주자였다.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당시 유행하던 비비드 한 구슬 목걸이도 반 친구들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때쯤, 슬그머니 하나 장만했었다. 고등학교 때 노스페이스가 유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이미 바람막이나 숄더백을 들고 다니고 있을 때쯤, ‘나도 하나 있어야 하나…’ 하고 뒤늦게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최근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두쫀쿠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유행할 때는 먹어볼 생각조차 없다가, TV에서 전현무 아나운서가 그것을 직접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처음 맛을 봤으니, 유행의 후발주자라기보다는 거의 문 닫기 직전에 들어가는 수준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마라탕도 그런 존재였다.
유행이 한풀 꺾이고 나서야 처음으로 시켜 먹어봤고, 그 한 번이 계기가 되어 한 달 내내 점심을 마라탕으로 버틴 적도 있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재료를 고르는 방식이라 토핑은 비슷비슷했지만, 가게마다 미묘하게 다른 매운맛과 향이 있어 그 차이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 며칠에 한 번씩 가게를 바꿔가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마라탕을 찾겠다고,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지만 뒤늦게 빠졌던 마라탕 열풍이 역시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한 달쯤 지나자 자연스럽게 그 음식과 멀어졌고, 마라탕은 내 마음 한편에 ‘좋아했었지’ 정도로 남아 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몇 주째 이어지던 ‘먹고 싶은 음식이 전혀 없는’ 입덧 기간 중에, 그 세 글자가 불쑥 떠올랐다.
마라탕.
맵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괜히 배탈이라도 나면 약을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으니,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찾아온 ‘먹고 싶다’는 감정 앞에서 '혹시나 싶어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나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또, 느끼함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속을 단번에 씻어줄 수 있을 마라탕은 마치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느껴졌다.
마침 회사 앞에 늘 손님이 붐비는 마라탕 가게도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나는 거의 이끌리듯 그곳으로 향했다. 청경채, 숙주, 배추, 여러 종류의 버섯, 분모자, 중국당면, 옥수수면까지 야무지게 담았다. 고기는 전혀 당기지 않아 넣지 않았고, 맵기는 1단계부터 5단계 중 양심상 2단계를 선택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내 앞에 마라탕이 놓였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묘상한 느끼함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쫄깃한 분모자를 한 입 씹자, 묘하게 안정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음식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그 한 그릇은 완벽했다.
나는 거의 숨도 쉬지 않고 그릇을 비웠다.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그날은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퇴근 후 남편에게도 “지금의 나한테 마라탕이 딱이야”라며 한참을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마라탕을 먹었다.
전날 깔끔해진 것 같았던 속이 다시 느끼해진 기분이 들어, 이번에는 다른 가게의 마라탕을 배달로 주문했다. 역시나 국물은 시원했고, 나는 또 한 번 그릇을 깨끗이 비워냈다. 속은 다시 말끔해진 것 같았고, ‘야채도 많이 들어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은근한 죄책감도 스스로 눌러 담았다.
나는 원래 장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어떤 종류의 해산물이든 고기든 가리지 않고 먹어서일까, 해외여행을 가서도 물갈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유제품을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기에, 스스로 생각하기에 꽤 튼튼한 위장을 가진 사람이었고, 이에 은근한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배탈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니까.
나는 원래 면역력이 좋은 편이니까.
임신 중이라 해도, 의사 선생님이 분명히 금지한 것들만 피하면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틀째 마라탕을 먹은 그날 저녁부터 이상하게 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과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은 점점 커졌고, 새벽이 되자 결국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수건을 쥐어짜듯 배가 아파왔고, 그 통증이 반복될수록 머리까지 지끈거리며 식은땀이 났다. 그제야, 이것이 단순한 배아픔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기’였다.
분명 장염 증상인데, 배가 아파도 함부로 손을 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이 상태가 뱃속의 아이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걱정이 걱정을 불러왔다. 괜히 먹지 않던 마라탕을 이틀이나 연달아 먹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들자, 자극적인 음식을 지양해야 함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참지 못했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오랜만에 찾아온 ‘먹고 싶은 음식’을 따라간 것이 잘못이었나 싶은 마음에 억울함도 함께 밀려왔다.
그렇게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희미하게나마 느껴지는 태동을 확인하려 애쓰느라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 나는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아픈 것보다, 이 일이 혹시 아이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임신 후, 내 몸이 아니라 뱃속의 아이부터 걱정하게 된 첫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