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곰은 잘 있다곰

by 가온


다음 날, 출근을 하자마자 회사에 사정을 말씀드리고 곧바로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다행히 회사 건물과 아주 가까운 곳에 여성의원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은 한 번도 눈에 띈 적이 없던 곳이었는데, 꼭 필요한 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눈에 보였다. 마치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갖춘 채 등장한다는 '해리포터' 영화 속 '필요의 방'처럼.


아홉 시 십 분.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대기 인원이 일곱 팀이 넘었다. 나처럼 급한 마음으로 온 사람도 있었을 테고, 정기 검진이나 각종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진료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순간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쩔 수 없이 순서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챗GPT를 켰다.

‘임신 중 장염 증상 해결 방법’

‘임신 초기 장염, 아기에게 영향 없을까?’

밤부터 이어지던 질문을 다시 쏟아내듯 입력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의 끝에는 늘 비슷한 문장이 붙어 있었다. 전문가가 아니니 증상이 심하면 병원에 가라는 말.


‘쳇, 겁쟁이.’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나 역시 전문가의 답을 듣기 위해 병원에 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은 진료를 받고 싶다기보다, 초음파로 뱃속의 작은 생명체가 무사한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생각보다 길지 않게 느껴진 30분이 지났고, 내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5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평소 다니던 병원은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날은 여성 선생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배는 여전히 콕콕 쑤셨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린 탓에 기운도 빠진 상태였다.


“어디가 안 좋아서 오셨어요?”선생님은 밝은 목소리로 물으셨다.

“마라탕을 이틀 연속 먹었는데요… 장염인 것 같아요. 어제저녁부터 계속 화장실을 갔어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는데, 임신 초기라서 걱정돼서요…”


선생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말씀하시며, 일단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어둡고 조용한 초음파실에 누웠다. 일주일 전에 정기 검진을 받았는데도, 이상하게 또 긴장이 되었다. 이내 화면에 자궁의 윤곽이 보였고, 그 안에 작은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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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곰.


지난주에는 그저 동그란 덩어리 두 개처럼 보였던 것이, 불과 일주일 사이에 작은 손과 발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쿵쾅쿵쾅.

작지만 분명하게 뛰고 있는 심장.


“잘 크고 있네요. 여기 손이랑 발 보이시죠? 예정일은 5월 초쯤으로 보이는데, 맞으시죠?”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팔과 다리를 갖추어 젤리곰 형태가 된 그 모습은 아마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진료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생님은 장염 증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차분히 물으셨고, 나는 어젯밤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지금은 괜찮으세요?”

“네, 지금은 버틸 만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상태라면 약보다는 충분한 휴식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임신 초기에는 쓸 수 있는 약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장염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탈수를 막아주거나 원활한 배변활동을 돕는 등의 보조적인 약 정도만 처방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몸을 쉬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상하게도, 젤리곰이 잘 있다는 걸 확인한 이후로 콕콕 쑤시던 배의 통증도 조금은 가라앉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약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집에 가서 쉬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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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하면, 특히 초기에는 신선하지 않은 음식이나 날것,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혹시라도 아프게 되면 마음대로 약을 쓸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말을 반쯤은 흘려들었던 것 같다.


‘나는 원래 배탈이 잘 안 나는 사람이니까.’하는 생각이 은근한 믿음처럼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것을 제때 먹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그래야 아기에게도 좋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니,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임신을 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내 몸과는 다른 생명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원래 우리 몸은 외부의 것을 침입자로 인식하고 막아내려 하지만, 태아는 그 ‘외부’에 해당하면서도 동시에 지켜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면역 체계가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음식도 이 시기에는 쉽게 탈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나는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어쩌면 조금은 가벼웠을 수도 있다는 걸.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를 크게 탓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남은 기간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배는 여전히 콕콕 쑤시고, 몸에는 힘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조금 편안해져 있었다. 화면 속에서 보았던, 작은 손과 발을 꼼지락거리던 그 젤리곰이 자꾸 떠올랐다. 아무 이상 없다고, 잘 자라고 있다고, 말 대신 몸으로 대답해 주는 것 같던 그 모습이.


덕분에 나는 안심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괜히 속으로 한 번 더 중얼거리면서.

젤리곰은 잘 있다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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