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밍아웃2

by 가온

고민했다.


남편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요즘 유튜브에서 많이 보이는 ‘임밍아웃 이벤트’를 해줄 것인가. 아니면 출근 중인 그에게, 겉으로는 티 내지는 않지만 내심 결과를 기대하고 있을 그에게, 이 소식을 지금 전해줄 것인가.


나는 한때 스스로를 ‘이벤트의 여왕’이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이야 남편을 만난 지 10년이 더 흘렀고, 우리 역시 웬만한 ‘○○데이’는 무던하게 흘려보내는 사이가 되었지만, 예전의 나는 꽤 성실하게 그런 날들을 챙기던 사람이었다. 밸런타인데이에는 직접 초콜릿을 만들었고, 빼빼로데이에는 형형색색의 빼빼로를 포장해 건네곤 했다. 1년 중 가장 ‘스페셜 데이’인 생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하고, 선물을 고르고, 그날 하루를 어떻게 꾸밀지 며칠 전부터 고민하는 일이 당연했다.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더해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라면 분명, 이런 특별한 순간을 그냥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남편 임밍아웃 이벤트’를 검색해 보았다. 누군가는 두 줄이 선명한 임신 테스트기를 예쁜 상자에 담아 건네주었고, 또 누군가는 산부인과에 먼저 다녀와 초음파 사진을 케이크와 함께 선물처럼 전해주기도 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대부분 울고, 웃고, 껴안으며 예상 가능한 모든 감정을 한 번에 쏟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장면들이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무언가를 준비했을 텐데, 막상 이 상황이 되니 자신이 없었다. 나 스스로도 아직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오롯한 감정을 담아 전달한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가장 나다운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담담하게, 마땅히 그리고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던 것처럼.


"어떻게 됐어? 결과 나왔어?"

남편이 보낸 카톡에, 아까 찍어둔 임신 테스트기 사진을 보냈다. 자연광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희미한 두 줄이, 다행히 형광등 아래에서 그나마 조금 더 선명해 보였다.


그리고 한 줄 덧붙였다.

"두 눈을 씻고 억지로 봐야 겨우 보이는 느낌으로 보이는데...아직은 몰라 ㅎㅎ "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화면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카톡창의 ‘1’이 사라졌는데도, 남편의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아마 사진을 확대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나도 아까 그랬으니까.



화면 캡처 2026-03-31 115021.png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보인다!!! 두 줄이네!"

"오 신기하다!!!!"

2025년 8월 22일, 출근길 지하철 어딘가에서 이 메시지를 확인했을 남편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나처럼 잠깐 멍해졌을까, 아니면 조금 더 기뻐했을까. 그 순간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일 군산에서 소맥 마시는 건 틀린 것 같네...”

라는 말을 덧붙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생각해 보니, 이 사실을 알려야 할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자주는 아니지만 안부를 주고받는 가까운 친구들도 있었다. 회사에도 언젠가는 알려야 할 일이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는 조금 더 확실해진 뒤에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이가 적지 않은 만큼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임신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는 시기는 테스트기의 양성 판정 줄(앞 줄)이 뒷 줄보다 더 진해지는, 이른바 ‘역전’이 일어난 이후가 좋다고 했다. 그전에도 병원에 갈 수는 있지만, 아기집을 확인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 테스트기를 사용했다.


혹시 테스트기마다 다른 결과를 보여주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도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종류를 사두었다. 아침마다 결과를 확인하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진해진 앞쪽 선을 바라보는 일이 어느새 습관처럼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선은 점점 또렷해졌지만, 기대하던 ‘역전’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비슷한 상태가 이어지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열흘쯤 되었을 때,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피검사를 했고, 의사 선생님은 임신이 맞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다음 주에 다시 와서 아기집을 확인하면 그때 100%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테스트기에 두 줄이 보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의학적으로 확실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아직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에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일주일 뒤, 우리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제야, 드라마에서나 듣던 말을 직접 듣게 되었다.

“축하합니다. 임신이네요”

그 짧은 한 문장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예정일은 2026년 5월 초순쯤이겠네요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벅차오를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차분했다. 안도감은 있었지만, 감정이 크게 요동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천천히 실감이라는 것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 임신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었고, 그 단어를 나에게 붙여보는 일도 어딘가 어색했다. 아마 이 사실과 친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 하나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최소 8개월, 남편과 술잔을 기울이며 소맥을 마실 수 없는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


그 사실은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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