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야 하지 않을까?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하나가 잔잔하게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 Time in a bottle'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포레스텔라가 새롭게 편곡한 곡을 들으면서부터였다.
Jim croce가 부른 원곡도 너무 좋다.
운전할 때 팝페라나 크로스오버곡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영어는 잘 못 해도 귀에 잘 들리기는 했다.
한 번은 샹송에 꽂혀서 불어를 배워 보고 싶어서 프랑스어 기초책을 샀다. 의욕이 앞섰지만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포기를 하고 배우고 싶은 노래를 100번 정도 듣고 따라 부르다 보니 대충 즐길 정도는 되었다.
책을 쇼핑하듯 사는 나. 장르도 다양하다 심리, 추리, 로맨스, 판타지, 전문서적등. 나의 책장은 다채롭다.
책을 사는 돈은 아깝지가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고민을 많이 하고 산다. 책을 꽂을 곳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다 읽은 책들은 중고로 다시 팔기도 하고 빌려주기도 했다.
엄마께 책을 많이 빌려 드리는데 책을 펼쳐서 손으로 가운데 부분을 문지르는 것을 보았다.
"책을 왜 그렇게 해요?"
"똑바로 펴야 책이 안 넘어가잖아"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다. 하지 말라고 말하며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안다. 고쳐지지도 않을 테고 서로 기분이 언짢을 것 같아서 애써 외면했다.
엄마는 재미있는 책을 빌려 달라고 한다. 재미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취향이 있어서 빌려드리고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좋은 생각이라는 책을 구독해서 매달 책을 보시는 엄마의 취향은 확고하다. 에세이나 소설을 주로 보신다.
동생의 취향은 주식. 재테크 같은 책이나 애들 교육 관련 쪽이다.
엄마께 심심하실 때 하시라고 민화 컬러링북을 사드렸다. 깎아서 쓰는 색연필과 연필 깎기까지 함께.
처음에는 정색을 하셨다. 재미있는 소설책이나 갖고 오지 이런 거 가져왔냐며. 해보며 재미있다고 시도는 해보라고 했다. 얼마 뒤 전화를 해보니 재미도 없고 팔만 아프다고 했다. 뭘 얼마나 했길래 팔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라고는 보는 것 말고 그려 본 적이 없어서 컬러링이 자신이 없으셨던 것 같다.
고르지 못하게 칠해진 그림을 보며 천천히 하나하나 보여 드리며 설명을 해 드렸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는 다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몇 달이 지나 엄마 댁에 갔을 때 자랑하듯 보여 주시는 엄마의 미소가 참 소녀 같았다.
"엄마 우리 여름에 같이 미술 학원에 그림 배우러 갈까?"라고 물었다.
"네가 안 바쁘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라고 하셨다.
엄마는 그동안 일만 하셔서 취미라는 것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은 열심히 하셨다. 엄마 집 근처에 못이 큰 게 하나 있고 올레길 같은 등산 가기 좋은 산이 함께 있어 하루에 1시간 이상은 건강을 위해 움직이신다. 오랜 세월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고 계시는 중이다.
나는 운동을 싫어하는 편이다. 걷는 건 좋지만 매일 꾸준히 할 자신은 없다. 하루에 7~8시간을 일하고 아이들 픽업하고 돌아와 청소하고 저녁을 먹으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치유농업사 공부를 하기 전에는 그래도 피곤하지 않으면 러닝 머신 30분씩을 하거나 앞으로 미는 전신 운동을 했었다.
체중이 늘어나면 발목에서 신호가 온다. 심하게 삐고 나서는 날씨가 추워지거나 비가 오면 시큰 거린다.
시간은 참 야속하게도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 드리고 싶은데 할 일은 끝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은 넘쳐 난다.
경력직 알바로 엄마와 함께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3~4일을 만나 점심은 맛있는 것을 사드리려고 노력한다.
겨울에는 밥을 해서 먹었다. 여름인 지금은 10시부터 땀으로 샤워하는 느낌이라 일하다가 중간에 나와 불 앞에서 조리하는 것이 힘들었다.
매 끼니때마다 어떤 음식을 해야 할지 걱정하는 것도 힘들고 나도 점심시간에는 누군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쉬고 싶다.
핑계를 하나 더 만들었다. 자기 전 3시간씩 치유농업사 공부를 하기 때문에 너무 피곤하다는.
사실에 가깝지만 엄마 눈엔 그저 게으르고 안쓰러운 딸 일수도 있을 것 같다.
치유농업사 시험이 끝나면 해야겠다고 미루어 둔 하고 싶은 것들이 자꾸 싸여가고 있다.
사둔 책들도 읽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다. 잠도 많이 푹 자고 싶고, 엄마와 여행도 가고 싶다.
금, 토 경상대에 강의 들으러 가다 보니 일요일은 아이들과 멀리는 못 가더라도 시간을 꼭 함께한다.
오늘은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다. 고작 1박 2일인데 보고 싶다.
혼자서 잘할 수 있도록 훈련을 잘해왔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장애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수련 시설은 정해져 있어 해마다 간다. 작년에는 당일 치기였다.
저녁에 잠깐 통화했었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마지지막으로 내가 했던 말은 "딸 사랑해. 잘 자고 내일 만나자"였다.
"네" 답과 함께 칼 같이 전화를 끊어버리는 딸 때문에 한 참을 웃었다. 내심 서운 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금요일에 시간을 빼기 위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 했다.
이번 주 고추 물량은 150박스를 땄다. 물량이 늘어 나는 만큼 가격도 좋으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물량도
늘어나 경매장에서 품질 대결 구도가 된다. 누가 얼마를 더 받았냐 덜 받았냐가 이슈가 되기도 한다.
물량이 많으면 가격도 낮아진다.
가온을 안 하는 초여름 이 시기가 찐인데 씁쓸 해진다. 물량을 전량 수거 해가는 업체에서도 우는 시늉을 한다.
물량이 많아져서 다 못 쳐내겠다고. 이 말은 '사장님 단가를 좀 낮추면 안 될까요?'라는 뜻이다.
계약 재배라서 하 한가가 정해져 있고 상한가는 경매 시세 보다 조금 더 받는다. 그 대신 상품성은 좋아야 한다. 수거 업체 정 부장님의 눈빛만 봐도 안다. 원 데이 투데이 거래 하시나? 서로 기싸움이 팽팽하다.
하지만 말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금요일마다 비가 오는 것 같다. 강의 실에 앉아 있으면 안 그래도 추운데 에어컨까지 감기 걸리기에 딱 좋을 것 같다. 내일도 열심히 공부해야지.
오늘도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아무리 먹고살기 바빠도 취미 하나는 있어야 하는 것 같아.
나 자신을 위해서..